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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서울의 최상급 호텔에 눌러앉아 청와대 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대북 관련 고위 수뇌부들과 연쇄 회동을 한 북한 통일전선부장 김영철 일행이 2박 3일간의 방남 일정을 끝내고 지난달 27일 북한으로 돌아갔다. 우리 정부 측은 김부장 일행과의 회동 내용에 대해 지금까지 일체의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5200만 국민의 생사와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달린 중차대한 문제를 함구만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회동 내용의 줄거리라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국민에게 해야 될 소명이며 국민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할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김정은도 이번 서울 회동에 대해 핵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으면 우리 정부와 미국 측에 대답을 해야 된다.

앞으로 시간이 대답을 내어놓겠지만 늦기 전에 양측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를 밝혀야 한다.’ 김정은이 어떤 내용의 답을 할지 대한민국 국민과 청와대뿐만 아니라 워싱턴의 백악관까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김정은이 비핵화 회담의 실마리가 될 단초를 내어놓을지 아니면 한·미 이간과 남·남 갈등을 부추기며 핵과 미사일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식의 상투적인 평화회담 안을 내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 백악관은 김영철이 방남 했을 때 “북한이 우리와의 대화 의지가 비핵화로 향하는 첫걸음인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대북제재의 강도가 지금까지 보다 거칠고 불행한 2단계로 넘어가게 된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대북군사 옵션을 행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그동안 북한은 김정일-김정은 부자 2세대 20년간 한·미 간과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면서 뒤로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쏟는 이중성을 보여왔다. 그런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때는 핵으로 인해 죽음에 직면했다는 절박감을 느꼈을 때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북핵 폐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절박감이 현재의 김정은에게는 보이질 않는다. 북한이 지난달 23일 김영철을 남한으로 보내기 전에 노동신문을 통해 “우리의 핵 포기를 바라는 것은 바닷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미국은 김영철의 방남 하루 전인 지난달 24일 북한의 해상 무역 관련 등 총 56건의 대북 추가제재를 발표했다. 이 제재는 지금까지의 몇 단계 제재보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도 높은 대북 제재다. 미국은 지금 북한과의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 측은 북·미 간의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론이 무색한 상태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때 방남한 김여정과 김영남 일행에게 ‘비핵화 회담’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단지 남북 정상 간의 회담 필요성만 밝혔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평창 폐막식에 참석한 류엔동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서는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북 핵 정책을 강경일변도로 향하고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있은 직후 “오직 올바른 조건 아래서만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 라며 문 대통령의 발언과 반대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과거 역대 미 대통령들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지난 25년 동안 아무 일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트럼프의 발언에는 “이제는 무엇인가 결판을 내어 보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 측은 북의 김영철 일행과의 2박 3일 동안의 회동 내용을 쉬쉬할 것이 아니라 북측에 어떤 제안을 했고 어떤 주문을 받았는지를 국민에게 윤곽이라도 밝히고 한미 동맹의 끈을 더욱 굳건하게 하는 것만이 북한으로부터 비핵화 회담을 이끌어내는 첩경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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