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예술작품을 동일시 해서 평가할 것인가, 분리해서 평가할 것인가? 오랜 논란거리가 재론되고 있다. 지난 2002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문인 4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대표적인 친일 문인으로 지목된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을 비롯, 미당 서정주, 채만식, 김동인, 유치진, 주요한 등 근현대 문학의 거목들이 줄줄이 올랐다. 

당시 제시된 친일 문인 선정작업 기준은 식민주의와 파시즘의 옹호 여부가 판단의 핵심이었다.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결과라도 작가의 자발성이 있느냐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최근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하면서 성추문에 연루된 문화예술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작가의 삶과 문학적 성취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해 의견이 엇갈린다. 작품은 작가의 삶과 별개로 봐야 한다는 시각과 작가가 일으킨 사회적 물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시각차는 친일행적 등을 평가할 때도 똑같이 적용됐다. 노천명, 서정주 등 친일 작가의 작품이 출판사의 자율에 따라 교과서에 계속 수록됐다. 친일작가의 작품의 경우, 크게는 무조건 삭제하고 가르치지 않아야 한다는 쪽과 관련 논란까지도 교육과정에 포함해 가르치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 것이다. 

교육부가 중고 검정 교과서 11종에 실린 고은 시인의 작품을 삭제하느냐 여부를 출판사의 재량에 맡긴다고 했다. 출판사의 자율성을 존중,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전문적 판단에 근거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포항과 경주에서도 성추행 작가들의 작품을 지우거나 내리고 있다. 포항시 청사 벽면에 걸려 있는 고은 시인의 ‘등대지기’ 작품을 철거키로 했다. 이보다 앞서 국립경주박물관은 상설전시관인 신라역사관 중앙홀에 걸려 있던 사진작가 배병우씨의 작품 ‘흥덕왕릉의 석인상과 소나무’, ‘경주 서악동 능묘군’과 신라 미술관의 ‘석굴암본존불’을 이달 초에 떼 냈다. 예술 작품은 작가 정신의 소산이기 때문에 작가와 작품은 결국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일이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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