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경 변호사.png
▲ 박헌경 변호사

세계 패권다툼의 일환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전쟁으로 우리나라의 국제 수출환경이 어려워지고 있고 미국의 금리 인상 등 5고(高) 시대의 파고로 국내 경기 전망은 장차 상당히 어두워지고 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평화협상은 미·중 경제전쟁 해법보다도 훨씬 더 어려워 그 전도가 쉽지 않은 가시밭길이다. 이러한 어려운 정치·경제 환경 속에 처해있는 우리나라에서 진보니 보수니 진영논리나 친박이니 친문이니 계파 파벌보다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멸사봉공할 수 있는 진정한 젊은 정치 리더들이 많이 출현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기틀을 닦아주었으면 하는 바램 가득하다.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중도개혁 또는 중도보수 정당을 지향한다는 바른미래당은 여지없이 참패하여 정의당보다 정당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진보 대 중도 및 보수의 비율은 30 : 40 : 30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중도를 지향한다는 바른미래당이 제대로 된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이번 지방선거에서 40%에 달하는 중도성향의 유권자 대다수가 진보정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과 정의당을 선택함으로써 진보정당에 대한 투표율이 60%를 차지하였다.

중도란 진보와 보수의 중간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통합하여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중도에 대하여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신라시대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이다. 원효대사는 특정한 종파나 문헌에 치우치지 않고 불교 안의 모든 사상을 조화시키고 통일함으로써 부처님의 참 정신을 구현하려고 하였다. 화쟁사상은 극단과 아집을 타파하되 일체의 주장을 버리지 않고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조화와 통일을 이루고자 한다. 오늘날 중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정당은 원효의 화쟁사상에서 중도의 참된 가치와 지향점을 배우고 21세기 대한민국이 가야할 제3의 길을 제시하여야 한다.

중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정당은 진보와 보수의 일체의 주장을 버리지 않고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 나가고 처절한 반성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정책과 대안으로 국민에게 제3의 길을 제시해 나갈 때 40%에 달하는 중도층의 지지를 결속시키고 이를 넘어 좌우로 외연을 넓혀 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중도라고 하면서 중간에 머물 때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정당으로 변질되어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수권정당이 될 수 없고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

해방공간에서 미국과 소련의 양 강대국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양분하고 극단적인 좌우의 이념 대립으로 중도가 숨 쉴 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때 중도의 정신으로 좌우합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한 중도정치인으로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 조소앙 같은 분이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국회부의장과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죽산 조봉암은 좌파 진보주의자이면서 우파로도 분류될 수 있는 중도 정치인이다.

조봉암은 20살에 3·1운동 주동자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루고 출옥 후 1924년 박헌영, 김단야 등과 조선공산당 조직을 주도하여 항일운동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 감옥에서 7년간 복역하였다. 1945년 8·15 광복 때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하여 활동하였으나 1946년 박헌영을 비롯한 당원들이 좌우합작에 비타협적으로 나오자 조선공산당을 탈당한 후 남한 단독선거에 참여하여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하고 대한민국 국회부의장과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조봉암은 농림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일제시대 농노에 가까운 소작농의 질곡에 허덕였던 대다수 농민을 자작농으로 바꾸어 민주주의 기반인 중산층을 형성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의 최대 정적으로 떠올랐으나 이승만 세력은 조봉암에 위협을 느끼고 조봉암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진보당을 결성한 것을 구실로 간첩혐의를 뒤집어씌워 사형선고를 내려 사법살인을 저질렀다.

조봉암은 사형집행일 아침 사형장을 향해 걸어가던 중 서대문형무소 담장 옆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에 다가가 한참 동안 꽃향기를 맡은 뒤 담담히 형장으로 들어갔다. 조봉암이 마지막 형장에서 남긴 말이다. “이승만 박사는 소수가 잘살기 위한 정치를 하였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리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 희생물은 내가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