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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장맛비와 무더위와 열대야는 삼종 세트처럼 어울린다. 순차로 제공되는 코스 요리인 양 잇달아 등장하여 불볕더위 인내를 시험한다. 특히 한밤중 기온이 섭씨 25도 이상 머무는 열대야 현상은 행복한 숙면의 적이다.

열대야 수면을 위한 간단한 상식을 소개한다. 에어컨 실내 온도는 25∼26도가 바람직하다. 너무 낮은 수은주는 냉방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찬물로 샤워를 하면 역효과가 일어난다. 일순간 시원할진 모르나 땀구멍이 닫혀서 한층 더워진다. 미지근한 수온을 권한다. 야식은 금물이나 우유는 괜찮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잠을 못 이룬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하루 이틀 수면을 취하지 못해도 건강이 나빠지진 않는다. 사흘째 밤에는 무조건 잠들게 된다는 생체리듬의 본능이 작동한다. 억지로 잠을 청하지 말고 독서나 음악을 듣는 게 낫다. 아니면 심야의 월드컵 축구에 빠져드는 것은 어땠을까. 이제는 끝났지만 말이다.

‘국뽕’이란 신조어가 있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다가 국가 대표 경기가 열릴 때만 열광하는 사람을 이른다.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오직 승리에만 몰두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나의 경우 축구 구경을 즐기긴 하나 마니아는 아니다.

월드컵 러시아 경기 일정이 확정됐을 즈음에 나름의 논리로 계획을 세웠다. 결승전과 3?4위전 두 경기만 시청하겠노라고. 밤늦은 시간대 중계되는 탓으로 다음날 나의 루틴이 흐트러지는 게 싫었고, 엑기스 같은 최고의 축구를 만나서 진정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구의 종주국 잉글랜드는 벨기에와의 3·4위전에서 패배했다. 흔히 UK를 영국이라 부르기도 하고 잉글랜드를 영국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정식 이름은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다. 영국은 포르투갈 인들이 잉글랜드 지역을 불렀던 명칭에서 유래한다.

역사적으로 영본국은 네 개의 영역으로 이뤄졌다.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 영국은 무려 4개 팀이 월드컵에 참가한다. 축구의 모국이란 후광으로 4개 지역의 축구협회가 각각 출전하기 때문이다. 잉글랜드는 축구의 고향이자 깡패 서포터 훌리건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The FA’이다. 거두절미 그냥 ‘축구협회’다. 축구의 탄생지라는 자부심이 물씬하다.

크로아티아를 꺾고 이십 년 만의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 ‘필드 위의 이민자와 그들만의 아트 풋볼’이란 표현이 실감난다. 마치 아프리카 나라인 듯 흑인 선수들 위주로 팀이 구성됐다. 상징적 존재인 지네딘 지단도 알제리계 이민자 2세다.

대부분 외국 출신인 프랑스 대표팀을 폄훼하는 선입견은 잘못이다. 그들은 스타로서 프랑스에 왔던 것이 아니라, 교육 환경 덕분에 인재로 길러졌기 때문이다. 톨레랑스의 고국답게 외국인에게도 평등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개방성은 문화의 역동성을 만들고 스포츠 또한 위력을 발휘한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그리고 크로아티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 키타로비치가 참석한 폭우 속의 시상식은 인상적이다. 귀하신 몸들이 흠뻑 젖은 채 선수들과 일일이 껴안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승패를 떠나 투혼을 다한 이들에 대한 뜨거운 격려이자 축구의 품격을 드높인 피날레. 각본 없는 드라마 월드컵 향연은 끝났으나 빗속의 포옹은 오랫동안 반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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