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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우리 사회가 연일 지속되는 무더위만큼이나 다양한 논쟁들로 뜨겁다. 최저임금 인상, 성차별 문제 그리고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을 두고 저마다의 의견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역시 건강한 민주사회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부 논쟁에선 핵심을 비껴간 거짓주장과 의도적인 사실 왜곡이 문제의 본질을 희석하는 듯해 안타깝다.

지난 20일 최저임금위원회가 의결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시간당 8,350원)이 우여곡절 끝에 관보를 통해 고시됐다. 하지만 여전히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은 가라앉고 있지 않다. 사용자 측은 높은 인상률에 이의제기를 고려하고 있고, 근로자 측은 기대에 미치지 않는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입장 차이에 따른 양측의 불만은 당사자가 있는 협상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얼마를 올릴 것인가 보다 인상 그 자체를 문제 삼는 듯하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주장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던 열악한 노동조건이 민주화 이후 조금씩 나아지긴 했으나 노동가치 면에선 여전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이 가뜩이나 힘든 영세자영업자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견 타당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책임정치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이라면 그들이 말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는 다른 수준의 적정 인상 폭을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그저 부정적 영향만을 부각시켜 인상 자체를 문제 삼고 있을 뿐이다. 다른 숨은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정치권은 최저임금 논란이 있기 훨씬 전부터 불공정한 상가임대차 계약으로 자영업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터져 나와도 강 건너 불 보듯 해 왔다. 자영업자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돼도 여태 제대로 된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같은 민생법안들 역시 그대로 국회에 묵혀두고 있다. 그러고도 이제 와서 영세자영업자 처지를 걱정하는 척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일부 언론들은 이런 무책임한 정치권을 질타하기는 커녕 덩달아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문제 삼아 서민경제가 거덜 날 것처럼 연일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며 ‘을들 간의 전쟁’을 부추기고만 있으니 도긴개긴이다. 인건비 상승에 따른 영세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지원책 마련은 당연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노동가치 인정, 이 역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임을 잊어서도 안 된다.

서울 도심에선 수만 명의 여성이 여성혐오 범죄를 규탄하며 성 평등을 외치고 있다. 그 자리엔 일부 불순한 발언과 구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온라인 사이트에선 남성 혐오적인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댓글들이 판을 친다.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그 자체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여성차별 적 요소들을 제거해달라는 다수의 순수한 외침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한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은 다양한 계층의 요구들이 수렴되고 치열한 토론과 논의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대안제시가 이루어질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이 아닌 대립과 반목이 난무하는 소모적 논쟁은 사회를 병들게 할 뿐이다. 그리고 양보 없는 타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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