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머금은 낙동강 바라보며 사랑의 깊이 헤아려 보다

원이엄마 테마길을 걸으며 바라본 월영교
1998년 4월, 안동의 어느 마을의 택지를 정리하기 위해 묘들을 이장하던 중이었다. 고성 이씨 이응태의 묘를 옮기는 도중에 편지 한 통이 발견됐다. 이 편지는 이응태의 아내인 원이엄마가 지아비를 떠나보내며 쓴 편지다. 한글로 쓴 편지는 보존상태가 좋았다. 그 옆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신발이 놓여 있었다. 남편이 31살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 원이엄마는 임신 중이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담긴 편지는 4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왔다.
월영교 입구
그리고 5년이 지난 2003년, 안동댐에서 지나온 낙동강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놓였다. 다리의 명칭을 시민들에게 공모, ‘월영교’라고 지었다. 달 그림자가 내려앉은 다리라니,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월영교는 너비가 3.6m의 인도교이고, 길이가 무려 387m나 된다. 나무다리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규모다. 다리의 중간지점 즈음에는 월영정 정자가 놓여 있다.
월영교 한가운데에 있는 월영정
긴 다리를 건너며 쉴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월영정에 앉아서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리를 건너면 가로숫길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이 길은 원이엄마 테마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가로수 나무 그늘 아래를 걷기도 좋고, 벤치에 앉아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월영교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사랑’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며 사랑의 자물쇠를 설치하는 우리나라 여느 관광지처럼 이곳에도 자물쇠가 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것은 ‘상사병’이라고 이름을 붙인 작은 병을 자물쇠에 채워 놓는다는 것이다. 아픈 병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담는 용도의 병(bottle)의 의미라고 한다. 조금 색다르게 포장이 돼 있어 흥미롭다.

월영교는 이름처럼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다리를 장식하는 조명이 모두 켜지면 꽤 화려한 옷을 입게 되는데 물에 비친 반영까지 더하면 2배로 아름다워진다. 게다가 10월 말까지 주말에 3차례 분수 쇼가 펼쳐진다. 다리 양옆으로 뿜어내는 물줄기에 조명이 더해지면 화려함은 극에 달한다.
원이엄마 테마길
원이 엄마 테마길을 걷다 보면 산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을 볼 수 있다. 안내판에는 안동석빙고로 가는 길로 안내하고 있는데 계단이 가팔라서 선뜻 올라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올라가 보면 무려 보물급 문화유산이 있다.
안동석빙고
보물 제305호로 지정된 안동석빙고는 겉으로 보면 고분처럼 보인다. 정면에 입구가 있으며 문은 잠겨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볼 수가 있고, 안에서 불어나오는 서늘한 한기를 느낄 수도 있다.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이곳으로 옮긴 것이어서 모습도 온도도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호젓한 월영대 숲길
석빙고 뒤로 이어지는 호젓한 숲길이 걷기가 좋다. 아름드리 소나무에 둘러싸인 이 숲길은 선성현 객사로 이어진다. 이 건물은 사신이나 귀한 손님의 숙소로 제공된 건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돼 있다. 이 건물 역시 안동댐 건설로 원래 있던 곳을 떠나 이곳에 옮겨졌다.

원이엄마 테마길을 따라 민속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프리마켓인 그림애 월영장터가 열리고 있는데, 매월 둘째 주 토요일 낮 시간대에 운영을 하고 있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으면 수시로 열리기도 한다고 한다.
프리마켓 월영 장터
다양한 핸드메이드 제품과 먹거리들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며, 월영교 주변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림애 장터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신세동벽화마을에서도 정기적으로 오픈이 된다.
안동민속박물관
원이엄마길을 따라 안동호 방향으로 이동하면 안동민속박물관이 나온다. 원래는 안동댐이 건설되며 수몰되는 지역의 문화유산들을 이전하기 위해 마련해놓은 부지였는데 그곳에 박물관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2개의 층으로 된 실내전시관과 야외박물관으로 구성돼 있다. 약간의 산비탈에 조성된 야외 박물관에는 각종 기와집과 초가집 등 고택들과 물레방앗간, 가마터 등 다양한 옛 건축물들을 잘 구현해 놓았다.
안동민속박물관의 전시물들
실내 상설전시관에는 2개의 층으로 구성돼 있다. 안동의 유교문화권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해 죽을 때까지의 일대기를 모형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1층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 어귀에 있을 동제당이 나타나고, 그다음 기자에서 아들을 낳기 위해 소원을 비는 아낙이 나온다. 다음은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성인이 되는 모습들을 모형과 소품들을 통해 계속 보여준다. 2층에는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등을 통해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신세동벽화마을
월영교에서 약 3km 정도 이동을 하면 신세동 벽화마을을 만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마을미술프로젝트로 꾸며지게 된 마을이다. 2009년에 조성되어 내년이면 10년 차가 되는 나름 벽화마을 중 선배축에 들어가는 마을이다. 콘텐츠는 오래될수록 묵힌 된장같이 깊은 맛이 우러나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문화 콘텐츠는 정확한 콘셉트와 철학이 기둥이 돼야 한다. 그림들이 하나같이 예쁘긴 하지만 전국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고만고만한 내용이며 안동만의 콘텐츠는 아닌듯하다. 그래도 신세동 마을과 그림들이 잘 어우러진 곳으로 월영교를 보고 난 뒤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할매점빵의 드립커피
벽화마을 한편에 할매네 점빵이 있다. 몬드리안을 연상시키는 모던 한 도색의 건물 입구에는 ‘입춘대길’과 ‘건양다경’의 한자가 붙어 있어서 다소 어색하지만 정겹다. 입구에서 안을 보니 동네 할매 일곱 분이 앉아 계셨다. 더운 여름 가게 안은 에어콘이 빵빵하니 이곳에 모여 계셨나 보다. 흠칫하며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다가 할매 한 분과 눈이 마주친다. 반기시며 들어오라고 해서 홀리듯 들어간다. 할매들의 휴식을 방해한 것 같아서 연신 미안해하는데 반갑게들 맞아주신다.

드립 커피가 4000원이다. 아주 익숙한 솜씨로 분쇄돼 있는 원두를 드리퍼에 올리고 커피를 내리셨다. 드리퍼 옆에 놓인 삶은 계란이 정겹다. 다른 할매 한 분은 휴지를 둘둘 말아서 땀을 닦으라고 주셨다. 주름진 손에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그렇게 나온 테이크 아웃 커피잔에는 얼음 조각이 둥실둥실 떠 있다. 냉장고에서 얼린 각얼음으로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래도 커피는 미지근하고 맛은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어디서 동네 할매들이 내려준 핸드드립을 먹어볼 수 있겠는가. 할매는 주름진 그 손으로 세상의 어느 바리스타보다 정겨운 커피를 선사해주었다.
▲ 글·사진=이재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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