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남이는 26세 나이로 병조판서가 됐다. 18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한 남이를 세조는 무척 아꼈다. 세조의 총애를 받던 남이를 세자 때부터 못마땅하게 여기던 예종은 세조가 죽고 왕위에 오르자 남이를 한직으로 내쳤다.

천하의 모사꾼 유자광에 의해 역모에 몰린 남이를 예종은 당장 잡아들여 친히 국문을 했다. 왕의 곁에 서 있던 신하들은 유자광의 모함인 줄 알면서도 누구 하나 남이를 변호해 주지 않았다. 남이는 처음엔 역모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모진 고문으로 정강이 뼈가 부러지자 역모 혐의를 시인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심한 고문에도 살아나려 한 것은 장차 나라의 큰일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기 위해서였는데 이제 정강이가 부러져 병신이 됐으니 살아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자탄하면서 거짓 자백을 했던 것이다. 예종은 “누구와 역모를 꾸몄느냐?” 물었다. 남이는 왕 좌우에 늘어선 대신들을 둘러본 뒤 영의정 강순을 가리키며 “저기 있는 저 영상대감과 함께 모의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80이 넘는 영의정 강순은 영문도 모르는 체 잡혀가 심한 고문에 못 이겨 역모를 시인했다. 남이와 강순 두 사람은 처형장으로 실려 갔다. 죄인을 호송하는 수레 위에서 강순이 남이에게 울부짖으며 물었다. “이놈아, 죽으려거든 혼자 죽지 어째서 죄 없는 나까지 끌고 들어가느냐?” “대감은 뱃심도 좋소. 난들 죄가 있어 죽는 거요. 당신은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왕에게 한마디 변명도 해주지 않았소. 그러고도 한 나라의 영상으로 체면이 섭니까? 나 같은 청춘도 말없이 죽으려는데 당신은 살만큼 살았으니 됐지 않소.” 강순은 그제서야 왕에게 남이의 무고함을 변호해 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버스 지난 후 손들기였다.

트럼프 정부의 현직 고위관리가 뉴욕타임스에 “대통령의 언행이 국가 건강을 해친다”면서 “이런 혼돈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린이 같은 트럼프의 질주를 막는 어른이 있다”는 글을 기고했다. 강순의 죽음은 어른 노릇을 못한 것이 죄다. 대통령의 질주를 막을 ‘청와대 어른’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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