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무관 역임한 문무겸전의 인물
의병활동 지원하며 일제에 침략 맞서

▲ 장봉환 선생
각종 경축행사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군악대의 연주와 축하행진이다.

이 군악대를 창설한 사람이 대한제국 때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출신의 장봉환(1869~1929) 선생이다.

1901년 고종의 명으로 대한제국에서 직임검사, 시위연대대대장을 지낸 장봉환 선생은 1901년 2월 양악 군악대(서양악기)를 창설하고 군악대장을 지냈다.

고종은 러시아 황제의 즉위식에서 힌트를 얻어 서울을 지키는 시위대 안에 양악 군악대를 만들 것을 장봉환 시위대장에게 지시하고 클라리넷·오보에, 등 목관악기와 트럼펫·호른 등 금관악기, 타악기를 조합한 30인조 규모의 양악 군악대가 창설됐다.

군악대는 독일인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의 지도를 받으며 각종 경축행사와 주 2회 정도의 음악연주회를 열었다. 이들의 연주는 장안의 화제가 될 정도였으며 당시 서울에 거주하는 외교관 특파원 상인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장 선생은 이듬해 최초의 관립극장인 협률사도 세웠다.

117년 만에 대한제국이 창설한 양 악대를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7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제1회 탑골공원 대 음악축제’가 열렸다.

대한제국의 자주정신을 되살리는 군악대 연주를 재현하기 위해서다. 주최는 사)뉴코리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후원은 서울특별시와 경북 예천군이 한 행사다. 탑골공원은 고종황제가 양악 대를 창설해 매주 정기연주회를 했던 의미 있는 장소다.

장봉환 선생은 대한제국 칙임검사, 육군보병부령, 시종원 시종(현 비서관), 시위 연대 대대장 (궁궐수비대), 대구진위대장 등을 지내면서 고종을 최측근에서 모신 인물이다. 대구 진위 대장 시 의병활동을 지원하고 관내 유학생 등에게 의병봉기를 선동하다가 1905년 12월 14일 일본군에 발각돼 일본의 압력에 의해 보직 해임됐다. 부친인 장화식(1853~1938)은 대한 제국 군무 국장을 지낸 인물로 대한제국의 충신이다.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선 인물로 일본제일 은행권의 유통금지령 공포, 외국인의 탈법을 막고 일본인의 불법전화시설철거, 부당한 일본과의 통신협정 개정요청 등 온몸으로 저항한 이다.

장봉환 선생은 1888년(고종 25)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인 육영공원에 입학해 영어, 수학, 정치, 지리 등의 교육을 받고, 대한제국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의병 활동을 지원하고 의병봉기를 추진한 인물이다. 외교관으로 출발해 무관으로 은퇴한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인물이다.

영어·러시아·불어를 구사할 줄 하는 국제통으로 한학의 바탕 위에서 서양의 배움과 견문을 익혀 문무겸전하고 신구쌍벽(新舊雙壁)을 이룬 양미(兩美)의 지사(志士)다.

서울에 거주하는 장봉환 선생의 증손자인 장한덕 (64) 씨는 “어릴 적 아버지가 늘 말해 주었는데 할아버지는 국권 침략에 맞서는 충신이다 보니 일본군에 늘 피신해 다니셨다”며“ 김봉균 선생이 쓴 ‘장화식 장봉환 부자의 충효의 일생’ 책이 재조명돼 할아버지들의 업적이 재 조명 되길 바란다”고 했다. 증손자 장한덕 씨는 예천 농고를 나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다 퇴임했다.

이상만 기자
이상만 기자 smlee@kyongbuk.com

경북도청, 경북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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