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 대학보다 100년 이상 앞선 사립 고등교육기관
한국의 서원은 현재 600여 개가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
△서원은 학식과 인품이 있고 재물을 탐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아온 선비들의 배움터.
“불의에 굴하지 않고 학문과 덕을 쌓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길만을 걸어가겠노라” 학식과 인품이 있고 재물을 탐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아온 선비.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정신문화라고 한다면, 단연코 ‘선비정신’이 꼽힌다. 선비정신은 학문은 물론 생활 전반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선비를 길러내는 역할을 하던 곳이 바로 ‘서원’이었다.
서원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선현에 대한 제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육의 기능이었다.
실제로 소수서원은 미국 하버드대학보다 100년 이상이 앞선 역사를 가지고 있다.
퇴계는 1549년 1월에 경상도관찰사 심통원(沈通源)을 통해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賜額)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명목은 서원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제를 포함한 여러 차원에서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상소문을 본 어린 명종이 우리나라에 서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고, 대제학 신광한(申光漢·1484∼1555)에게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해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로 결정했다.
1550년(명종 5) 2월에 친필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적은 편액을 서원에 하사하고 아울러 사서오경 등의 서적을 내렸다. 이때부터 백운동서원은 소수서원으로 불리었고, 최초의 사액서원이라는 영예를 얻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해 서원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사액을 내려 국가가 서원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서원이 갖는 중요한 기능인 선현의 봉사(奉祀)와 교화 사업을 조정이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문화의 새로운 아이콘 ‘선비’ 급부상…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으로 ‘선비정신’ 주목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해 서원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사액을 내려 국가가 서원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서원이 갖는 중요한 기능인 선현의 봉사(奉祀)와 교육 사업을 조정이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소수서원을 시작으로 경상도에 많은 서원이 잇달아 세워졌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서원 417개소 중 173개소가 경상도에 세워졌다. 그 서원 중 사액서원은 200여 개였는데, 그중 56개가 경상도에 집중돼 있었다.
실제로 소수서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자리 잡게 돼 고종 때 전국의 서원이 철폐될 때도 철폐되지 않은 47개소의 서원 중 하나로 남게 됐다. 소수서원은 이후 신학문이 들어와 서원에서 교육의 기능이 다 할 때까지 약 4000여 명의 원생들이 교육을 받은 것으로 파악되며, 이 지역을 대표하는 수많은 인물을 배출시켰다.
신재가 지은 소수서원 원규에는 첫째, 제사를 정성으로 받들 것, 정성으로 받들지 않으면 음향하지 않는다.
소수서원의 원규만 보아도 얼마나 철저하게 선비정신을 지키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소수서원의 이 같은 정신은 수많은 선비들을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지금까지도 많은 유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고 있다.
직방이란 말은 ‘안은 경으로 곧게 다스리고 밖은 의로써 바르게 하라. 공경과 의로움이 섰으니 덕은 외롭지 않다’ 는 뜻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인성교육에 주안점을 두었던 선비교육의 뜻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밖에도 성생단, 지락재, 학구재, 전사청, 장서각, 영정각, 사료관등의 건물과 서원에서 소장돼 오던 많은 고서와 고문서 등 많은 유적 유물이 있다.
△살아있는 역사.
소수서원 곁에는 선비정신과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공간인 소수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소수서원에 이어져 온 유물의 유출을 방지하고, 보다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후손들에게 소수서원의 선비정신이 현대에도 이어져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소수서원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선비정신을 계승, 교육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공간이자, 우리의 귀중한 유산의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다.
세계유산이 요구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뿐만 아니라, 죽은 역사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선비정신’의 장이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소수서원(紹修書院)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나라의 보물이 세계의 보물로 인정받는 시간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