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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파장이 베란다를 넘어 거실에 닿기 시작했다. 여름빛은 서서 들어오는 듯하고 가을빛은 앉아서, 겨울빛은 누워서 들어오는 듯하다. 가을 한가운데의 빛이 책상 아래까지 들어와 발등을 따뜻하게 감싸 쥐고 있다. 바야흐로 은행잎은 황금색이 되었고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만개했다. 바다는 한층 푸르고 들판은 보다 깊은 눈을 가지게 되었다. 가을빛의 선물이다.

카뮈의 첫 번째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한 동기를 빛 때문이라고 묘사한다. 어머니의 장례식과 지속되는 피로감이 그에게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켰겠지만 한여름의 빛은 그의 동공이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기능을 마비시켜버린 셈이다.

인체는 생체시계에 따라 낮과 밤의 24시간 주기에 맞춰 살아간다. 낮에는 활동하고 어두운 밤에는 잠자는 리듬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며 밤의 지나친 조명과 불빛은 생체리듬이 균형을 잃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생체리듬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밤과 같이 어두운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빛에 노출되면 합성이 중단된다. 빛 공해라 할 수 있는 인공조명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 중 짧은 청색광이 각성을 일으키는데,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본다든가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사용하면 여기에서 강한 청색광이 방출되고 이러한 강한 청색광에 노출되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야간수면 시에는 약한 조명 아래에서도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깊은 잠에 들지 못해 다음 날 활동에 지장이 초래되기도 한다. 이것은 비만과 소화 장애, 심혈관질환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성장호르몬 등의 분비와도 관계가 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이러한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고 입시 등으로 수면 시간이 짧은 청소년기에는 성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성장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오후 11시와 새벽 2시 사이에는 숙면을 취하는 것이 좋으며, 수면 시에는 암막 커튼이나 블라인드 등으로 외부조명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좋다. 원치 않는 빛에 노출되었을 때에는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건강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휴식을 취할 때는 온화한 계열의 빛을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비타민 D는 햇빛을 통해 얻게 되는데 보통 얼굴, 손, 발 등의 부위를 일주일에 2∼3회씩 화상을 입을 정도의 강도로 노출하여야 한다. 즉 1시간 이내에 피부에 화상을 입는 사람이라면 15분간 햇빛을 쬐면 되는 것이다. 비타민 D는 암의 위험도 줄여주는데 비타민 D 함유 식품에는 등푸른 생선, 동물의 간, 달걀노른자, 버섯 등이 있다. 비타민 D는 지용성 비타민이므로 지방이나 기름과 함께 섭취하면 체내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하여 혼란 속에서 밤낮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한낮의 강렬한 햇빛이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역효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의학적 근거로 보자면 그는 그 순간 비티민 D의 합성이 원활해져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해소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계속된 수면의 질 저하로 낮의 활동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손바닥을 내밀면 그만큼의 빛이 쌓이고 두 팔을 내밀면 또한 그만큼의 빛이 당신에게 쌓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창인 가을 들판에 나가 한 번쯤 온몸에 가을빛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물론 지난밤 밤새도록 청색광과 싸우지 않았다면 말이다. 혹시라도 그랬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나가는 비둘기를 향해 자기도 모르게 돌멩이를 던지게 될지…….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말기를…….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김선동 kingofsun@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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