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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피시방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6일 만에 100만 명이 참여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서명에 동참할 분위기다.

가해자 측에서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이 폭발했다. 병력을 확인하고 감형 사유가 될 수 있는 관련 기록을 제출하는 건 법적 절차이긴 하다. 하지만 진단서부터 제출한 건 심신미약을 근거로 감형부터 생각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경찰이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더라도 사과부터 하는 게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음주 사고를 내어 사람을 죽게 만든 사람도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받은 경우가 자주 있어 법의 공평성이 의심받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 정의와 합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경감시키는 사법 행위를 인정할 수 없었다. 정의의 저울추 역할을 해야 할 법의 이름으로 비상식과 불합리가 실행되는 현실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안 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심신미약 사유로 해석될 수 있는 병력이나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형의 경감 또는 면제를 생각하면서 더욱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일부러 정신 질환약을 복용해서 병력을 쌓은 뒤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감형 또는 형을 면제받는 작전을 구사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 22일 서울 등촌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 40대 남성이 이혼한 전 부인을 살해한 사건인데 가해자는 이혼 후 우울증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한 뒤 ‘나는 처벌을 거의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부인과 친척들을 협박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심신미약 관련 법률이 범죄에 용기를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정신 병력에 따른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경감시키도록 한 법률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작동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심신장애, 심신미약 규정을 담은 형법 10조는 규정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돈 있는 자, 권력 있는 자, 전관예우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자는 심신미약 규정의 수혜를 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심신미약 상태일지라도 인정되지 않고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결’을 내세워 판사 주관에 따라 판결이 날 수도 있다. 사법 당국도 그런 사례들이 없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시민 100만 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심신장애를 이유로 죄를 감면하거나 감형하도록 규정한 형법 10조를 폐지에 준하는 수준으로 손보아야 한다. 정신질환 등의 질병과 심신장애, 사물 변별능력, 의사 결정 능력, 심신미약 등에 대한 개념규정을 엄격히 하고 엄밀히 판정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하여 심신장애 또는 심신미약이 범죄에 악용되는 일을 막아야 하고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심신장애를 이유로 감형을 받거나 죄 값을 면제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심신미약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죗값은 받는 걸 원칙으로 해야 한다. 죄를 감면하는 경우 엄격한 규정과 객관적인 판정기관의 판정에 따라야 한다. 또 죗값을 치르는 동안 특별한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의료진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신질환과 우울증을 국가 책임 아래 치료할 수 있는 의료 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음주를 이유로 형을 감형시켜서는 안 된다. 바람직한 음주 문화 형성과 안전한 사회 건설을 방해한다. 사리판단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음주를 하고 절제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음주 범죄를 용인하는 것은 범죄를 조장하고 음주 후 범죄를 당한 사람과 유족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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