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박물관' 꿈 못 이루고 밤하늘 가장 빛나는 별로 돌아간 '星一'

▲ 4일 타계한 ‘국민배우’ 강신성일의 경북 영천시의 '성일가(星一家)'의 마당에는 평소 고인과 함께 운동을 하던 풍산개 ‘딤프’가 주인의 죽음을 아는지 묘소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고 신성일은 한옥 마당 한쪽에 부인과 함께 묻힐 묘터를 마련해 놓았다. 권오석 기자

한국 영화의 전설 영화배우 강신성일(이하 신성일)은 그토록 좋아하던 경북 영천시 괴연동 전통한옥을 감싸고 있는 채약산의 가을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영화처럼 살다간 신성일은 10여 년 전부터 이곳에 한옥을 짓고 영화처럼 살아왔다.

지난해 초대하지 않은 폐암이 그에게 찾아왔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품위를 잃지 않았다.

특유의 경상도 사나이 뚝심으로 영화와 영천 한옥 사랑은 계속됐다.

투병 중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하고 건재함을 알렸지만 그 이후 병세가 악화됐다.

별처럼 빛나는 그의 영화가 별빛촌 영천에 자리 잡은 것은 결코 우연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 자리 잡았지만 끌리는 마음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신성일은 영화에 못지않게 한옥이 자리 잡은 영천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 이웃 주민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어 마음을 열어 교감을 하며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 그저 형식적으로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는 한옥 생활 초창기에 영천에 영상박물관을 지으려고 했다. 2009년 5월에는 마을주민들을 한옥에 초청해 생일잔치를 하기도 했다. 2013년 11월에는 영천시민들을 초청해 ‘강신성일과 함께 하는 영화음악회’를 열었다.

‘국민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4일 타계한 가운데 같은 날 오전 11시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살았던 영천 집을 찾았다.

영천시 괴연동 채약산 산자락에는 신성일씨가 노후를 보내며 지냈던 아름다운 한옥 한 채와 평소 친구처럼 의지하며 함께 했던 풍산개 2마리가 힘이 빠진 채 맞이하고 있었다. 또 마당 주변에는 본인과 엄앵란 씨, 강석현 등 자녀들이 결혼 47주년을 축하하는 기념식수들이 심어져 있다.

이날 대구 달서구에 사는 50대 부부는 소식을 접하고 신성일 씨 영천 집을 방문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둘러보고 애도를 표했다. 그와 영천은 특별하고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에 따르면 다만 국회의원 시절 옥살이를 마친 그가 2007년 당시 열혈팬이며 후원자인 정모(여)씨의 고향인 영천시 괴연동에서 자주 모임을 갖고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정 씨의 밭 원두막에서 주변 지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주변 산자락이 마음에 들어 집을 짓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에 1년여에 걸쳐 집을 짓고 2008년 10월 20일 영천시 괴연동 630번지에 전입, 자신 이름을 딴 ‘성일가’를 지어 영천과 인연을 맺으며 살게 됐다. 소식을 들은 영화·연예계 선후배들이 신성일 씨의 전원생활을 보기 위해 영천을 방문하는 한편 각종 방송에서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이후 신 씨는 2010년 ‘나는 별일 없이 산다’는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 대구·서울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는가 하면 지역에서는 한약축제 등 각종 행사 자문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17년 폐암 선고받기 전에는 영천에서 조용히 자료를 수집하며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영천의 지인들은 “사람들이 신성일 씨를 처음 접하기가 어렵지 같이 지내면 그렇게 순수할 수가 없다”며 “영천의 5일 장날이면 시장에서 함께 도가니를 사서 술 한 잔 걸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했는데 고인이 돼 아쉽다”고 말했다.

강신성일이 47주년 결혼 기념으로 지난 2011년 11월 14일에 식수한 강수화. 권오석 기자.jpeg
▲ 강신성일이 47주년 결혼 기념으로 지난 2011년 11월 14일에 식수한 강수화. 권오석 기자
생전에 신성일 씨는 “마지막까지 엄앵란과 함께하고 싶다”라는 말과 같이 영천시 괴연동 한옥 마당 한쪽에 부인과 함께 묻힐 묘터를 마련해 놓았다.

이와 함께 신성일 씨에 대한 추모 사업 여부도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지상학 (사)한국영화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선배의 꿈 중에 하나가 영천 ‘성일가’에 ‘신성일 박물관’을 만드는 거였다”며 “그걸 못 이뤄서 가슴 아프다. 나중에 유족이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고 밝혔다.

당대 최고 스타이며 예명마저 ‘뉴스타 넘버원’을 뜻하는 성일(星一)인 그가 보현산 천문대가 있어 별을 보기 가장 좋은 도시, ‘별들의 고향’ 영천에 영면하며 밤하늘 가장 빛나는 별로 다시 돌아갔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