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 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감상> 시의 주인공인 ‘나’는 부제로 볼 때 죽은 청년 화가 L이지만, 30세에 요절한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죽은 청년 화가 L이 자신의 죽음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하여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랑과 꿈을 드러내고 있다. 해바라기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태양을 향하는 향일성(向日性)을 지니므로 나의 의지는 죽음을 초월한다. 죽어서도 차가운 비석을 세워 스펙을 새겨 넣는 작금의 세태에 비춰볼 때, 이 시의 주인공은 그 뜻이 얼마나 단호한가. 죽음의 순간에 현세에서 생각하고 몰두한 바대로 후생에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과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짓밟고 죽는 순간에도 욕망의 덩어리를 짊어진 채 떠날 것인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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