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보아야 하는데 거기가 어딘지 몰랐다
해거름녘에 붉게 핀 것들을 보고
한 사람은 작약이라 했고, 또 한 사람은 모란이라 했는데
나도 같이 거기 왜 서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모란이라 했던 사람의 아이는 몹시 아팠고,
우리는 모두 같이 걱정했는데,
그후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해거름녁에 붉게 핀 것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우리는 어디 기대어 좀 울고 싶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감상>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시인은 봄을 맞이하는 숙명적인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 반면에 위의 이성복 시인은 모란이 질 무렵을 인생전체에 비유하여 노래하는 것 같다. 시인은 붉게 핀 모란을 보고 어떤 인연으로 거기에, 그때에, 왜 함께 서있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과거의 인연은 지나고 나면 꿈과 같고 미래도 잘 모르니 삶 자체가 환상이 아닌가. 인연을 맺었던 사람의 아픈 아이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는 것은 한때의 시절인연이므로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도 잠시 숨 고르는 사이에. 이러한 모든 관계가 시간과 공간에 놓여 있지만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어딘지 잘 모르겠으나 좀 기대어 울고 싶었거나 울고 싶을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어느 것 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물거품 같은 것이 인생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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