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모란은 흰색과 붉은색의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저물녘 극락전 앞에 내가 나타났을 때 모란은 막 백색의 커다란
꽃잎을 겹겹이 닫고 있었다

학의 날개 같은 꽃잎 안에 촘촘한 노란 수술을 품고 노란색 수술은 무시무시하게 붉은 암술을 감추고 있었던 것

모란은 환희와 비애라는 두 세계를 손금처럼 정밀하게 나누어 가졌다

뜨거운 방바닥에 몸을 누이고 개울 건너편 모란의 기척을 듣다 잠들었다

백모란은 흰색과 모란이라는, 지난여름과 이 봄이라는 극단을 지니고 있기에

마흔다섯 절에서 객사한 명창 모란과 나는 아프고 나은 몸이라는 낡은 비밀을 지니고 있기에

백모란 벌어진 꽃잎은 노랗고 붉은 꽃술 때문에 캄캄해지고,
아침의 백모란 향은 앞이 안보이도록 막강해지고

모란이라는 절벽 앞에 나는 위태롭게 서 있다





<감상> 백모란은 많은 양가성(兩價性)을 가지고 있네요. 흰색과 붉은색, 환희와 비애, 지난여름과 이 봄, 개화와 낙화, 아픈 몸과 나은 몸, 양 극단 모두를 가지고 있어요. 모란이 지면 막강한 향기는 사라질 것이니 시인은 절벽 앞에 서 있는 심정이죠. 인생 전체를 잃는 것 같은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그런데 몸이 아프고 슬픔에 빠질 수도 있으나, 그 반대편에 나은 몸과 기쁨이 있을 테니.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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