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상] 매흙질
[수필 동상] 매흙질
  • 경북일보
  • 승인 2018년 11월 21일 21시 48분
  • 지면게재일 2018년 11월 22일 목요일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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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 김진혁作
가을 태풍이 휩쓸고 간 지난 주말에 고향집을 찾아갔다. 마당은 온갖 나뭇잎과 쓰레기로 엉망이 되었으며, 흙탕물로 얼룩덜룩한 바람벽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고 틈이 많았다. 집안을 예전처럼 복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였다. 고르지 못한 벽을 손으로 훑는데, 겨울이 지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뼛속까지 시린 칼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아 뒤통수가 서늘했다. 서둘러 매흙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매흙질은 벽이나 부뚜막, 안마당에 매흙을 바르는 일을 말한다. 산비탈에서 퍼온 백토를 커다란 대야에 담고 물을 부어 흙탕물을 만든다. 그 물을 다른 그릇에 담고 하루를 재우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데, 마치 흐트러진 상념이 가슴 밑바닥에 침잠하듯이 내려앉는다.

오늘은 매흙을 미리 만들어 놓았기에, 귀얄로 바르면 된다. 일을 하는 틈틈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비해 자주 매흙질을 했다. 매흙질을 거치고 나면 흙벽은 매끄러웠다. 시커멓게 그을음 묻은 부뚜막도 화장을 한 새색시처럼 새 단장을 했다.

아버지는 내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맥질하는 법을 배웠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였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친구들에게 크든 작든 보증서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로 인해 몇 번의 경제적 손실을 겪었지만, 누군가 부탁을 하면 쉽게 거절을 못했다.

어느 해 칠월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또 보증을 섰다. 신발 가게를 몇 군데나 크게 하던 소꿉친구였다. 일이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잘못되었다.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며, 가족들을 건사할 방 한 칸을 덕기 위해 매일 옷에 허연 소금꽃이 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쫓기듯 살던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생긴 속상함이 아버지를 병들게 했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참아오고 지탱했던 삶의 무게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졌던 것이리라. 아버지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슬픔의 무게가 묵중할수록 하루하루가 고단했기에 몸이 견디지 못했다.

한참을 앓고 난 그 해 가을,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시골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는 명절을 앞두고 매흙질하는 법을 익혔다. 할아버지가 일하는 것을 자연스레 거들면서 배우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귀얄을 잡은 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차츰 손에 익었다.

매흙질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었다. 일에 집중하는 동안 상념을 잊었다고 했다. 시커먼 부뚜막이 마치 아버지의 상처 난 마음인 듯 여러 겹 두껍게 덮었다. 허물어진 벽이 마치 아버지의 어지러운 생활을 닮은 듯 거침없이 덧칠했다. 어쩌면 가족의 건강과 새로운 삶의 희망을 덧입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성싶다. 빛바래고 한 쪽 귀퉁이 떨어진 삶이라도 매흙질하듯 정성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매끄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겠지. 예전에 아버지의 손길이 지나다녔던 자리를 더듬어 찾듯 찬찬히 맥질한다. 갈라진 틈을 메우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내 생활의 고단함을 꼼꼼히 부려놓는다.

몇 년 전, 건강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심장이 멈춰 응급실에 실려간 뒤, 두 차례 심장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퇴원했지만, 그 때부터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다. 직장일과 집안일, 어린 삼 남매 키우는 것이 힘에 부치는 때가 많았다. 여러 해 동안 몸과 마음이 시달린 연유로 내 마음 벽에는 끊임없이 거칠고 뾰족한 선들이 돋아났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를 대고 줄을 그어 매끄러운 선을 만들어 놓아도 수시로 삐뚤어지고 굽었다.

그러나 내 옆에 남편이 있어 감사하다. 둘이 함께 거친 인생의 흔적을 매흙질할 수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오늘도 고향집 구석구석을 매흙질하면서 튀어나온 직선과 끊어진 사선 같은 내 마음을 남편과 달래고 보듬는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축 처져 있던 어깨가 곧게 펴진다. 기진맥진한 내 생활의 흔적에도 그늘이 걷히고 햇살이 드리워지는 것 같아 귀얄 잡은 손놀림이 가볍다. 덧칠을 반복하는 동안, 앞으로 펼쳐질 내 삶도 단장한 바람벽처럼 모난 데 없기를 기원한다.

매흙질한 집은 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처소였으리라. 흙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어깨를 겯고 있는 옹기들이 늘어서 있고, 처마 끝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대글대글한 감을 꼬챙이에 꿰어 늘어뜨린 풍경이 있어 더욱 정겨운 곳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어온다. 매흙질한 자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려주겠지. 아버지가 매흙질을 마친 뒤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운 추억들이 고향집 언저리를 맴돌다가, 서서히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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