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동상

유병수작
소낙비가 지나가자, 미세-먼지도 사라지고,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더욱 선명하다. 동남쪽 구석에 놓아둔 화분 속의, 이름 모를, 분홍빛 꽃에 물방울이 함초롬하게 맺혀 있다. 모처럼 무지개도 떠올랐다. 오늘은 왠지 좋은 예감이 든다. ‘핑크빛-구두’, 그녀가 다시 이곳 흡연구역(Smoking Area)을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남서풍을 타고 밀려오고 있다.

그 ‘핑크빛-구두’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마치 음악처럼 즐겼다. 뻐꾸기 울음소리를 휴대폰의 신호음으로 사용한다. 그녀를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일주일 전부터 그녀를 기다리느라 힘이 좀 빠져 있었는데, 장대비가 기분 전환을 시켜준 셈이다. 거의 매일 나를 찾던 그녀가 요즘 일주일 동안이나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있다. 60대-중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분홍빛 스커트와 분홍빛 립스틱을 즐기는 여인이다. 이곳을 찾을 때면 하루도 변함없이 분홍빛 구두를 신고 오는 여인, 5㎝ 정도 되는 핑크빛 ‘하이-힐’만을 고집하는 여인. 나는 그녀를 ‘핑크빛-구두’라고 부른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올 4월4일에, 예순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는 여인. 하지만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은 그녀에게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

내 하루의 시작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보통 기다림에는 초조함과 그에 따른 인내가 수반되지만, 내게 기다림이란 바로 설렘이다. 오늘의 첫 손님은 어떤 사람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일까…? 이곳, 흡연구역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다른 사연을 가진 경우가 많다. ‘건강의 적’이라는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징표가 아니던가. 이곳은 대부분 홀로 찾고, 여성은 선글라스를 끼고 오는 경우가 많다. 가끔 커플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커플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대화와 혼잣말, 또는 육담까지 버무려진 넋두리를 엿듣는 재미는 참으로 쏠쏠하다. 특히, ‘핑크빛-구두’, 그녀의 대화와 혼잣말들을 한 줄에 꿰면, 한 편의 인생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드디어, 첫손님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 40대의 여인으로, 올 2월부터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이다. 나는 그녀를 ‘백구’라고 부른다. 이 여인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백-구(하얀 강아지)와 함께 온다. 또 하나는, ‘유구불언’이란다. 이곳을 찾아 담배를 피우면서도, 매번 말이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가슴속 비밀도 이곳에서는 털어놓는데, 참으로 특이한 여인이다. 오늘도, 규칙처럼 동남-쪽으로 보이는 시냇물을 바라보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연기 사이로 묘한 미소를 날리며.

“백구야, 여기서 멈추고, 용서해 줄까?”

아, 이 여인이 하는 말을 처음으로 들어 본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일까. ‘용서’라니…? 시선을 집중시켰지만, 여인은 더 이상은 말이 없다. 대신, 멍멍이, 백구가 허공을 향해 짖어댄다. 여인이 담배를 깊이 빨아, 그 허공으로 뿜어 올린다. 숨죽이며 기다려도, 여인은 더 이상 말이 없다.

이곳, 중앙시장-2층, 폐기물 하치장과 화장실 사이에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있다. 바로 흡연구역(Smoking Area)이다. 흡연자들은 이곳을 ‘하얀-감옥’이라고 말한다. 교도소 감방과 다른 점은 철문도 쇠-창살도 없다는 것이다. 담배를 피운다는 죄(罪), 단지 그 죄목만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당당히 갇히는 공간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위해 선심 쓰듯 양보한 공간이 바로 흡연구역인 셈이다. ‘朝鮮日報’, 그 신문만을 들고 다니는 남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흡연구역은 갑(甲)들이 을(乙)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양보한 공간이다. 출입문도 창살도 없지만, 이 세상과 경계가 확실하게 구분되는 공간이다. 북서쪽으로는 폐기물들이 쌓여 있고, 북동쪽으로는 창고 하나가 있고, 바로 뒤로는 화장실이다. 동남쪽으로는 시야가 터져 있지만, 그쪽엔 바로 난간이이기에, 출입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내 이름은 ‘몰래-카메라’다. 사람들은 나를 시시티브이(CC-TV)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나를 이곳, 흡연구역에 설치한 이유가 있다. 3년 전, 이곳에서 불이 났다. 폐기물-하치장에 담배-꽁초가 떨어져, 불이 났던 것. 발화의 원인도, 누구의 소행인지도 알 수 없는 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쌓아 놓은 폐기물과 창고 한 칸을 태우고 진화되었다. 하지만, 중앙-시장 전체가 들썩였다. 상인들의 전체 회의가 소집되었고, 그 결과, 흡연구역에 나(CC-TV)를 설치하게 되었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잡는 것, 그것이 내가 맡은 일이다. 눈을 부릅뜨고 나는 지켜볼 것이다. 내 매서운 눈씨를 피해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몽땅 사진으로 찍혀, 영원히 보관된다.

흡연구역(Smoking Area), 이 감방(監房)의 장점도 있다. 2층이기에, 맑은 물이 흐르는 천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담배와 관계없이 천변 풍광만을 구경하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도 있다. 요즘 재래시장이 관광지가 되고 난 뒤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 감옥만의 특징이라면, 벽에 수많은 낙서가 있다는 것이다.

‘암(癌)이란 바로 삶의 앎이다!’

수많은 낙서들 중, 첫눈에 반했던 것이다. 내가 이곳을 지키기 전부터 있던 것이기에,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핑크빛-구두’, 그녀의 작품일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곤 했다.

오늘 이 순간의 기다림은 왠지 설렘과 초조함과 궁금증이 뒤섞인 분홍빛 통증 같다. ‘핑크빛-구두’, 그녀 때문인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그녀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쏟은 결과의 후유증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가 내게 들려 준(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엿들은) 사연들로 인하여 내 가슴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버린 결과…?

이 흡연구역의 시설은 단출하다. 화장실 벽에 철 구조물을 세우고, 비 가림 시설을 해 놓은 것이 거의 전부다. 그 속에, 중앙에는 재떨이 하나가 놓여 있고, 둘레에는 의자 3개가 비치되어 있다. 철제 의자 2개와 나무의자 1개. 재떨이 하나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준비한 것 같다. 마치 촛대 모양인데, 그 덩치가 자못 크다. 키는 약 1미터20센티 정도이고, 재를 떠는 부분은 마치 연꽃의 열매 모양이다. 그리고,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도 하나 있다. 거울이다. 가로 30㎝-세로 90㎝쯤 되는 거울이 북쪽 벽에 걸려 있다. 이곳에 거울을 비치한 의도가 무엇일까?

특히, 이 감옥 속 동남쪽 구석에는 화분(花盆) 하나가 놓여 있다. 큰 항아리 모양의 화분. 일주일 전, ‘핑크빛-구두’, 그녀가 남자들까지 동원하여 가져다 놓은 것이다. 화분에는 1미터가 넘는 키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그 식물의 원줄기 끝에는 나팔 모양의 담홍색 꽃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고 있다. 이 꽃이 무슨 꽃인지 궁금하여 ‘핑크빛-구두’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녀의 말에서 그 꽃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직접 묻고 싶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다음날, 천변의 풍광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 중 한 여인이 이 꽃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표현했었다, 마치 그 옛날 여인들의 예장인 화관(花冠) 모양 같다고. 하지만, 그 여인도 이 꽃의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꽃이라고 했다. 칸나(canna)처럼 생겼지만, 확실히 칸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이곳을 찾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꽃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핑크빛-구두’, 그녀가 오늘 다시 나를 찾는다면, 이 꽃의 이름을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지금 나는 그녀를 더욱 기다리는 것 같다. 순간,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화분 속의 꽃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홀연히 날아오른다.

이 감옥의 출입문 앞에는 마치 문패 모양의 문구가 걸려 있다. 이 흡연구역이 처음 설치되던 때부터 가훈처럼 걸려 있는 것이다.

‘금연, 건강을 위해 금연합시다!’

이 문구를 바라보며 ‘핑크빛-구두’,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채 이죽거렸다.

“충고하는 것 같지만, 경고를 하는구나. 조언하는 것 같지만, 조롱을 하는구나. 어쨌든, 고맙다. 이 ‘담배-맛’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아,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부터 만들려고 노력을 해야지. 쯧쯧쯧….”

‘핑크빛-구두’, 그녀는 담뱃불로 문패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던 느낌표(!)만을 태워 버렸다. ‘금연, 건강을 위해 금연합시다!’에서 유독 느낌표에는 동의를 할 수 없다는 뜻 같았다. 나도 그녀의 의견에 51%의 동의를 보내 주었다.

내가 이곳을 지키게 된 이후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도 몇 있다.

---담배를 피우며, 단 한 문장만을 계속 반복하여, 읊조리는 남자가 있었다. 그 한 문장은 <미안하다, 정말>이다. 밑도 끝도 없는 것이었다. 불면증 환자처럼 얼굴이 항상 시들어 있던 남자. 담배 한 모금을 빨아, 허공으로 내뿜은 다음, <미안하다, 정말>이라고 읊조린다. 이 행동만을 계속 하다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서둘러 나가 버린다. 요즘엔 보이지 않는 그를 나는 <미안하다, 정말>이라고 불렀다.

---아, 세상에, 신(神)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3년 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내 가슴이 가장 높이 뛰던 순간이었다. 그는 앉자마자 검붉은 넋두리를 쏟아냈었다.

“신(神), 당신께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 주신다고 했잖아요…? 담배부터 끊어야 한다고 해서, 좋아하는 담배도 끊었습니다. 99일 동안 단 한 하루도 빠짐없이, 종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딸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1주일 전, 죽었습니다. 그 순간, 당신은 내게 말했지요, 저의 기도가 ‘조금’ 부족했다고. 조금-조금-조금…! 그 <조금>이라는 것이 당신이 인간들에게 사용하는 마약(痲藥)이라는 것을, 일종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나는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담배’가 앞으로는 나의 신(神)이 되어 줄 것입니다. 담배는 나의 새로운 신(神)….”

흡연구역(Smoking Area), 이곳을 지키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핑크빛-구두’, 그녀마저도 모르고 있는 것.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핑크빛-구두’는 중앙시장-상인회의 회원은 아닌 듯하다. 그녀가 운영하는 ‘초원’ 의상실은 중앙시장의 길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녀가 운영하는 의상실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존재라, 항상 마음뿐이다.

어느새 ‘백구’가 떠나고, 또다시 내게 손님이 찾아온다. 얼굴에 검버섯 핀 40대 남자다. 밀가루가 묻은 앞치마를 걸친 차림으로 보아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그대로 온 것 같다. 매일 찾는 사람은 아니지만, 단골-손님이다. 유기농-빵집-사장. 사립학교 교사였는데, 사립학교의 비리(非理)를 세상에 고발한 죄로, 괘씸죄로 파면을 당했다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다시 받아주는 사업장은, 이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단다. 그래서, 자영업자가 되었다고…. 남자는 철재의자가 2개나 있는 데도, 반드시 다리 하나가 반쯤 부러진 나무의자에 앉아, 담배로 가슴을 태우곤 했다.

“아뿔싸…, 이제야,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구나. 아, 세상사, 사고-파는 것이구나. 사람들의 마음은 사고, 물건은 파는 것. 어쨌든, 우리 가게 안에서만큼은 부정부패는 없어야 한다. 빵 속에도 결코 비리는 담을 수 없다. 내가 주인이니까.”

모처럼 이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있다.

곧이어, 또 한 손님이 찾아온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요즘 창업을 하여 이 중앙시장에 들어온 사람인 것 같다. 모자를 쓴 50대 후반의 여자가 흡연구역, 이 감옥의 기둥에 붙어 있는 경고 문구를 바라보며, 뚝 멈춘다.

‘불-불-불, 불조심!’

그 경고문에 헛기침 한 방을 날린 다음, 여자가 투명한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가, 잠시 머뭇거린다. 작업복에 기름기가 묻어 있는 것이 ‘튀김-가게’를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남자가 옷깃을 여미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여자와 평소 아는 사이가 아닌 듯하다. 여자가 문 앞에서 머뭇거리자, 남자가 미소를 머금은 채 눈빛으로 들어와도 좋다는 사인을 보낸다. 50대 여자도 금세 미소를 보이며, 들어온다.

흡연구역(Smoking Area), 이곳은 참 묘한 공간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여도 금세 친밀해진다. 담배를 피운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동질감을 느끼는 것일까. 드문 경우이기는 하나, 안면이 없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합석이 가능하고, 대화까지 이어지는 공간이다. 뽀얀 담배-연기로 서로 소통하는 것 같다.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대부분 죄인처럼 서로 말이 없지만, 눈빛으로는 통한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 왠지 믿음이 가더군요.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생각이 깊다는 의미랍니다.

ⓐ---담배-맛을 아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40대에 비로소, 담배-맛을 알았어요.

ⓐ---‘암(癌)은 삶의 앎이다!’ 이 낙서만 보면, 내 가슴속에 회오리바람이…?

ⓑ---삶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바로 ‘담배’랍니다. 삶에 대하여, 깊고 넓은 생각 을 하는 사람일수록, 암(癌)에 걸리기 쉬운 것. 바로 <삶>의 역설이지요.

ⓐ---오, 하느님, 맙소사….

내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비슷하리라 본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곳에서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대화를 엿들으며, 많이 배웠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과 차림새만 보아도 그 사람의 직업과 대화의 내용을 대충 유추할 수 있다. 흡연구역, 이곳은 담배-연기만으로도 서로 가슴이 통하는 마법(魔法)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순간처럼, 서로 모르는 남자와 여자의 ‘눈빛-대화’를 훔쳐볼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서너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다.

50대 여인이 뿜어 올린 상현달 모양의 담배연기와 40대 남자가 뿜어 올린 하현달 모양의 담배연기가 그 감방을 빠져나와, 허공에서 만나, 보름달 모양이 되더니, 하늘로-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이윽고, 두 남녀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고…. 정말 다시 보기 어려운 장면이고, 행운이다.

나는 이곳을 지키며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해 보았다. 그 중 내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사람은 바로 ‘핑크빛-구두’, 그녀였다. 첫눈에, 그녀의 모습은 내 가슴에 새겨졌다. 그녀가 나를 처음으로 찾던 때는 첫눈이 오던 날이었다. 분홍빛 구두에, 분홍빛 립스틱의 여인이 <흡연구역(Smoking Area)>이라는 문패를 발견하고, 두 손을 모은 채 잠시 기도를 하는 자세로 서 있었다. 이윽고, 미소를 머금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 물고 분홍빛 넋두리를 쏟아냈다.

“…이곳이 흡연구역이면, 이곳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곳은 금연구역이라는 뜻이구나. 아, 무서운 사람들…! 하지만, 고맙다. 이 1.5평의 공간이라도 양보해 주었으니까. 이 ‘담배-맛’도 모르는 사람들아, 인생의 맛은 아는가? 한마디만 더 하자.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사람들 중,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담배연기로 한숨을 토해 내더니,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그 순간, 전선에 앉아 있던 참새들이 합창을 했고, 내 가슴속에는 하얀 눈이 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갖가지 상상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시선을 더욱 집중했다. 그녀는 내가 엿듣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혼잣말을 계속 했었다.

또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손님이 찾아오고 있다. 아, 이번에는 여고생 같다. 교복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샛노란-선글라스에, 붉은 립스틱까지 동원하여 나름 위장을 했겠지만, 내 눈에는 분명 여고생이다.

내가 이곳을 지키면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여고생이 홀로 나를 찾을 때다.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홀로 담배를 피우러 찾아오는 여고생을 보는 순간마다, 내 가슴속에 회오리바람이 일어 소용돌이치곤 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존재가 되었지만, 여고생을 대할 때만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붉은 립스틱의 여고생이 감방에 들어오기 전에 주위부터 살핀다. 여고생들의 규칙 같은 특징이다. 이어, 담배에 불부터 붙인다. 후~,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가장 높은 철재의자에 앉는다. 립스틱의 입을 주시하는 내 가슴이 벌써 붉게 물들어 버린다.

“아, 재수 없게도, 임신이라니!”

아, 참으로 난감하다. 이럴 때는 눈이라도 감아버리고 싶지만, 나는 눈을 감을 방법이 없다.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만 하는 가엾은 운명이다. 그렇다고 도와줄 수도 없는 상태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나는 두려우면서도, 외롭다.

“아…, 이것을 누구한테 말해야 되는 거야? 하느님께 고백하면…?”

내 입에서도 한숨이 터지고 만다.

‘하느님보다는, 부모님한테 먼저 고백해야지. 너의 모든 결함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엔, 오직 부모님뿐이야.’

내 말이 여고생에게 들릴 수는 없겠지만, 참을 수가 없다.

“아, 영준이한테도 비밀로 해야 되나?”

‘……!?’

아, 이 부분에선 나도 대책이 서질 않는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정직함이 때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매독>이라고 부르는 사람한테 배웠다.

“아…, 아빠, 확 죽어버리고 싶어?”

내 입에서는 조바심이 터진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살 수 있어. 지금 바로 너의 아빠를 찾아가야지. 아빠에게 엉덩이 3대만 얻어맞으면, 너는 살 수 있어.’

순간, 발걸음 소리 하나가 다가온다. 여고생이 서둘러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짓이겨 불을 끄고는, 달아나듯 감방을 나가며, 한 방을 날린다.

“아, 씨~발.”

그녀의 목소리가 내 가슴-판에 검붉게 새져진다.

이번에는, 이 중앙시장의 토박이이며, 1층에서 건어물-가게를 하는 박-씨가 나를 찾는다. 매일 찾는 손님은 아니지만,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손님이다. 고로, 나는 올해 예순아홉이라는, 그의 삶의 이력과 성격을 대충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햇볕에 마른 것은 쉽게 상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좌우명이다. 그가 자리를 잡고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또 손님이 찾아든다. 박-씨의 건어물가게와 마주보는 쪽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67살의 염-씨다. 둘은 2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지낸다. 박-씨가 먼저 말을 건넨다.

“염-사장, 어서 오게. 자네, 몸에서 비린내가 진동하는 것을 보니, 오늘은 장사 좀 된 것 같네?”

염-씨가 담배에 불부터 붙여, 연기와 함께 한숨을 토한다.

“개뿔 같은 소리. 오래되어 상하기 시작한 생선을 토막 쳐서, 반값도 못 받고, 떨이로 팔아 버렸네. 박-사장은?”

“나는, 아직, 파리만 날리고 있네. 한데, 오늘 기분은 나쁘지 않네.”

“왜? 박-사장, 무슨 좋은 일이라도?”

“기분 좋은 일은 있지. 바로 ‘최순실’ 때문에.”

“그게 무슨 말이야? ‘최순실’ 때문에 기분이 좋다고?”

“그렇지. 요즘 나는 TV-채널에서 ‘최순실-국정-농단-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솟더라고. 담배-맛도 꿀맛이 되고.”

“뭐야? 갑자기 담배-맛 떨어지네.”

염씨가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져 짓이겨 버리고 나서, 박-씨에게 따지듯 묻는다.

“나라를 망친, 그 여자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오늘따라 박-사장이 좀 이상하게 보이네?”

염-씨가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박-씨를 주시하는데, 박-씨는 입술에 미소까지 머금고 또 한마디를 던진다.

“<최순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공로자라고, 나는 생각하네. 역사에 길이 남을, 민주주의 발전의 공로자.”

“공로자…!? 그 여자가 민주주의 발전의 공로자라면,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대체 뭐라고 불러야 되는 거야?”

염씨가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여 한숨 빨더니, 박-씨를 향해 내뱉는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앞에 서 있는 재떨이의 밑동을 발로 차버린다. 재떨이가 벽에 부딪혀 허리가 조금 휘어지고, 머리 부분도 조금 찌그러들었다. 담배꽁초들이 바닥에 쏟아져 난장판이 되고…. 박-씨가 염-씨의 손을 급히 잡는다.

“아, 염-사장, 흥분하지 마.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고 나서 흥분해도 늦지 않아. 내 말은 이런 뜻이야. 요즘 소위 <최순실-게이트>로 불리는 ‘국정(國政)-농단(壟斷)’ 사건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거야. 특히, 정치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지. 담배를 끊었던 사람들조차 담배를 다시 피우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박-사장, 그렇다고, <최순실>이 민주주의 발전의 공로자야…? 저기 지나가는 개가 웃겠네.”

때마침 개 한 마리가 흡연구역 앞에 나타나, 어슬렁거리며, 무엇인가를 찾다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넘어진 재떨이를 바로 세워 놓고, 널브러진 담배꽁초를 대충 주워 담아 놓고 나서, 박-씨가 염-씨에게 말을 잇는다.

“민주주의 발전의 ‘공로자’란 말뜻을 좀 더 설명을 하면, 이런 거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시켜준 셈이라는 것이야. 저기, 시골 촌구석에 사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노인들까지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정치’에 대하여 곱씹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야. 이보다 더 훌륭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또 어디에 있겠냐는 것이야?”

잠시 담배를 연거푸 빨아 대며 듣고 있던 염-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헛기침 한 방을 날린 다음, 박-씨를 향해 한마디 날린다.

“박-사장 말에 일부 일리는 있는 것 같지만, <최순실>이 민주주의 발전의 공로자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네.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나처럼, 감옥살이까지 해 본 사람은 자네의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네. 아, 갑자기 담배-맛이 왜 이리 쓰냐. 담배-맛이 이리도 쓴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네.”

“아, 염-사장, 내가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군. 미안하네. 실은, 지금 내가 한 말은 내 생각이 아니야. 어느 사회학자가 한 말이야. 어제 신문 칼럼에서 보았어. 그 사회학자는 이런 말도 하더라고. 이번 <최순실-국정농단>사건으로 일어난 국민들의 ‘촛불’-시위는 과거 <프랑스-대혁명>에 비교될 만하다고….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최순실-국정 농단 사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1000억$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야. 약 100조원(100,000,000,000,000).”

“100조원!?”

염-씨가 피우던 담배를 다시 땅바닥에 던져, 짓이기며, 불만을 토한다.

“에잇, 더 이상 못 듣겠네. 박-사장 때문에, 오늘 담배-맛만 망쳤네.”

염-씨가 일부러 가래침을 만들어, 서울 쪽으로 날린 다음, 자리를 떠나 버린다. 겸연쩍어진 박-씨가 종종걸음으로 염-씨의 뒤를 따라가며 외친다.

“어이, 염-사장~, 어쨌든, 미안하네. 대신, 내가 막걸리 한잔 살게~.”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물음표가 떠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인생 고참들의 논쟁에 대하여 논평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징표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승자를 선택하라면, 나는 박-씨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 이유는, 먼저 흥분한 자가 진 것.

흡연구역, 아니 흡연자들의 ‘해방구’가 잠시 텅 비어 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참새 2마리가 날아든다. 암수 한 쌍 같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그 대화가 참 정겹다. 순간, 까치 한 마리가 날아들고, 참새들은 혼비백산 날아간다. 저것들한테도 <갑>과 <을>의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 <을>과 <병>의 관계인가?

뻐꾸기는 또 울고, 뻐꾸기 소리가 흡연자들의 <하얀 감옥>을 가득 채운다. 내 가슴속도 뻐꾸기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뻐꾸기가 울면, 내 가슴속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하얀 나비가 날고, 내 마음은 <담배>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로 날아가고….’

뻐꾸기 울음소리를 유독 좋아하던 ‘핑크빛-구두’가 자주 했던 말이다. 그녀 생각이 또 난다. 오늘의 소낙비처럼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데, 바람만 불어온다. 매일 대하던 일상이 사라졌을 때의 허전함이 이렇게 무거운 것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핑크빛-구두’, 그녀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 탓이리라.

그녀는 19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4남3녀 집안의 장녀였단다. 당시 가난한 집안의 맏딸은 교육의 기회부터 박탈당했다. 남존여비의 사상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장녀는 아들들의 교육을 위해 희생시키는, 당연한 존재로 여겨졌다. 장녀 본인들도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곧바로 봉제-공장에 취업을 해야만 했다. 눈물로 1년, 한숨을 쉬며 2년, 체념한 체 2년을 더 견뎌내다가, 선배들로부터 담배를 배웠다. 그 담배는 마약 같았다. 마법(魔法) 같았다. 거의 매일 야간작업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담배 덕분이었다. 그렇게 10년간의 소위 ‘시다’ 생활을 마치고, 재봉사가 되었다. 그녀의 봉급은 모두 6명(4남2녀) 동생들의 교육비가 되어 주었다. 5마지기의 밭과 3마지기의 논이 재산의 전부였던 집안에서 ‘핑크빛-구두’, 그녀의 월급은 가뭄에 단비 같은 것이었다. 결혼 정년기가 되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미루어졌다. 맏딸로서의 의무감이 대부분이었지만, 동생들을 교육시킨다는 자부심과 재미도 한몫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그녀가 봉제-공장의 고참이 되어 몸과 마음의 여유를 좀 느끼게 되었을 때는, 이미 결혼 정년-기는 훌쩍 지나고 말았다. 그녀의 꽃다운 청춘은 이미 꺾여, 이미 시들어 버린 후였다. 동생들의 교육을 위해 한 송이의 꽃이 피기도 전에 꺾어진 것…!

‘핑크빛-구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분홍빛 꽃에 앉으려다가, 인기척에 날아가 버린다. 또 손님이 찾아오는 것. 하얀 구두를 신은 60대의 시인이다. 이곳의 단골이다. 나는 그를 ‘시인’이라고 부른다. 이 남자는 이 흡연구역 속에서 시(詩) 창작 작업을 한다.



「사맥(絲脈)」

아내는 요즘 내게 허공의 연(鳶)이다,

가을의 순풍보다 초봄의 돌풍을 즐기는.

환갑(還甲)의 들녘에 서서

연(鳶), 연(緣)을 날린다.



자꾸 멀어지기에 연실을 되감는 순간,

허공을 가르는 날 선 휘파람소리.

춘풍에 끊어질세라,

연실 다시 풀어 주고.



라일락 추억 건너, 백련-꽃 그리움 앞.

백팔번뇌 실타래 끊어질 듯, 망고.

팽팽한

연실 타고 밀려오는

부부의 연(緣), 그 여정(餘情).



집에서 작업한 시를 인쇄하여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수정 작업을 한다. 이곳이 이 남자에겐 제2의 창작 작업실인 셈이다. 일단 들어오면, 담배 하나를 피워 문 다음, 가방에서 시가 적힌 A4용지와 펜을 꺼내 들고, 수정 작업을 한다. 이 남자가 쓰는 시(詩)는 시조(時調)란다. 우리 민족-시(詩), 시조(時調)란다.

사맥(絲脈)이라. 보름 전과 시의 제목이 똑같다. 요즘엔 이 시조(時調) 한 수에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시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요즘, 이 60대 시인의 부인이 바람피우고, 이 시인은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상상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허허허허…. 내 웃음소리를 들었을 리가 없는데, ‘시조-시인’이 급히 시조(時調)가 적인 A4용지를 가방에 넣어 버린다. 그리고, 벽의 낙서들 중 하나에 시선을 집중한다. 자기의 낙서에 누가 ‘댓글’을 달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담배>. 하지만, <흡연-구역>!



이 낙서는 이 시조-시인의 작품이다. 이 낙서에, 일주일 전 ‘핑크빛-구두’, 그녀가 댓글을 단 것이었다.

---이곳, <흡연구역>은 ‘추억’을 쑤어, ‘그리움’으로 발효시키는 장소.

시인의 낙서에 이렇게 ‘댓글’을 단 후, 눈물을 글썽이던 ‘핑크빛-구두’, 그녀가 더욱 보고 싶어진다. 그녀는 아직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녀가 가져다 놓은 화분에서는 이름 모를 꽃이 분홍빛으로 활짝 피어났다. 그녀를 기다리는 내 가슴속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버렸고.

또 뻐꾸기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종일 울어 댈 모양이다.

“토각-토각, 토각-토각…….”

구둣발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시인이 서둘러 자리를 뜬다. 하이를 신은 여자의 발소리 같다. 드디어, ‘하이’가 찾아오는 것인가. 하지만, 아직은 보이지는 않는다. 내 시야는 남쪽 방향으로는 확 트여 있지만, 북-서쪽으로는 비-가림 시설의 차양 때문에 시야가 그만큼 제한되어 있다. 흡연구역에서 3미터쯤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해야만 내 시야에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한다. 발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허리가 보이고, 얼굴이 맨 나중에 보이는 구조이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또 하나의 구둣발 소리에, 풍선처럼 부풀어 있던 내 가슴이 푹 꺼진다. 둔탁한 남자의 구둣발-소리가 들린다.

둘은 대학생 커플 같다. 들어오자마자, 여자가 백에서 담배를 꺼내 먼저 남자에게 건넨다. 남자가 ‘라이터’를 커내 여자의 담배에 먼저 불을 붙여 준 다음, 자기의 담배에 불을 붙인다. 서로 담배 한 모금씩을 빨아 허공에 향해 쏘아 올리더니, 타고 있는 담배로 건배를 하듯 담배의 끝을 맞대며, 소리 내어 웃는다. 참 보기 좋다. 나의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은 이 <하얀-감옥>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얼굴을 맞대고, 눈빛을 교환하며,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문득, 여자가 동남쪽 구석에 자리한 화분 속의 꽃을 발견하곤, 소리치듯 말한다.

“자기야, 이 꽃 좀 봐. ‘흡연구역’에 있을 꽃이 아닌 것 같다?”

남자가 자못 놀라는 표정으로 반응한다.

“누군지 몰라도, 참 고맙다. 이런 곳에 꽃을 가져다 놓다니.”

“자기야, 혹시,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

“아니. 너는?”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웃는다.

“나도 몰라. 잎이 정말 크다. 비 오는 날, 우산으로 써도 되겠다.”

화분 속 식물의 넓은 잎을 만지작거리는 여자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우리,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자?”

“어떻게? 무슨 단서라도 있어야지?”

“아, 정말, 그러네? 자기야, 무슨 단서라도 찾아 봐?”

“잎 모양을 보면 파초 같다는 생각이 들고, 꽃 모양을 보면 나팔처럼 생겼네. 혹시, 나팔꽃 종류가 아닐까?”

여자가 휴대폰 인터넷 검색창에 ‘나팔꽃’을 적어 넣어 본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꽃들은 모두 나팔꽃뿐, 화분 속의 꽃 모양과 비슷한 것이 없다. 젊은 남자가 생각이 낫다는 듯 나선다.

“아, 잎이 칸나와 비슷하다. 칸나 종류 같다. 칸나도 여름에 꽃이 피거든?”

젊은 남자가 얼른 휴대폰 검색창에 ‘칸나’를 쳐 넣는다. 둘은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칸나도 아닌 모양이다.

이때, 한 남자가 다가온다. 왼손에는 신문을 들고 있다. 그럼, 50대 후반의 단골손님이다. 나는 그를 ‘朝鮮日報’라고 부른다. 손에 신문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이 남자가 유일한 것 같다. 또한, 매번 같은 신문만을 들고 온다. 朝鮮日報. 겉모습으로 볼 때, 이 남자는 갑(甲)도 아니고, 을(乙)도 아닌 사람 같다. 딱히, 뭐라 표현하기가 곤란하지만, 어쨌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골초다. ‘朝鮮日報’가 흡연구역에 들어오려다가 남녀 커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그곳에 서서 남쪽의 천변 시냇물을 바라보며, 흡연구역 속의 남녀 커플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여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화분 속의 꽃을 두 팔로 껴안듯 하며, 남자에게 애원하듯 말한다.

“자기야, 이 꽃의 이름을 알아 볼 방법이, 정말 없을까?”

남자가 朝鮮日報를 든 남자 쪽을 바라보며, 속삭인다.

“저기, 손에 신문을 들고 서 있는 아저씨한테, 한번 물어 보자? 신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 분은 왠지 지식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나도, 그래.”

엿듣고 있던 ‘朝鮮日報’가 젊은 커플 옆으로 다가서자, 젊은 남자가 얼른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대며 끈다. 이어, 젊은 여자도 담배를 끄려하자, ‘朝鮮日報’가 급히, 한마디를 던진다.

“아, 괜찮아. 나 때문에 담배를 끄는 것이라면, 괜찮아. 계속 피워. 여기는 흡연구역이잖아. Smoking Area. 누구든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특별히 지정이 되어 있는 곳이잖아. 이곳에서마저도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

젊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젊은 여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난다. ‘신문’이 젊은 커플을 향해 미소를 날린다.

“자네들, 이 꽃의 이름을 알고 싶은가?”

젊은 커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50대 후반의 ‘신문’이 담배를 길게 빨아, 남쪽의 허공을 향해 길게 뿜어낸 다음, 말을 잇는다.

“먼저, 이 흡연구역에, 이 화분을 가져다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네. 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 담배를 사랑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드네. 속도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꽃은 이 <흡연구역>과 딱 어울리는 꽃이지.”

“이 흡연구역과 어울리는 꽃…!?”

젊은 여자의 입에서 감탄-의문문이 터진다. 젊은 남자도 초조한지 담배 하나를 꺼내, 다시 불을 붙인다. 젊은 남자는 아버지뻘 되는 ‘朝鮮日報’와 맞담배질은 하는 않겠다는 듯 약간 방향을 틀어 앉는다. 하지만, 눈은 그 ‘신문’의 입을 주시한다. ‘신문’이 다시 담배를 빨며 뜸을 들이자, 결국 젊은 여자가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을 한다.

“朝鮮日報-아저씨, 빨리 좀 알려 주세요?”

‘신문’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미소를 짓는다.

“에…, 이 꽃의 이름은, 담배-꽃이야. 담배꽃.”

“담배-꽃? 아 세상에, 이 세상에, ‘담배-꽃’이란 것도 있었어요?”

젊은 여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자, 젊은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속삭인다.

“지선아, 지금, 이 아저씨가 농담하시는 거야. 농담.”

젊은 남자의 반응에, ‘신문’이 잠시 하늘 쪽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는다. 담배 한 모금을 또 하늘을 향해 날리더니, 말을 잇는다.

“젊은이,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뜻이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네. 이 세상에, 담배-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마저도, 이 세상에 담배-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휴대폰-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되잖아?”

곧바로, 젊은 여자가 휴대폰으로 ‘담배-꽃’을 검색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는 두 젊은이의 입이 쩍 벌어진다. 젊은 여자의 휴대폰 화면에 분홍빛 담배꽃이 피어나고 있다. 휴대폰 화면을 위로 올리자, 담배꽃에 대한 설명이 흐른다.

‘…담배라는 식물은 <가지-과>의 일년초다. 남미 원산의 재배 식물로 키는 1.5미터~2미터쯤 자란다. 잎은 길둥글한 모양이며, 엄청 크다. 잎 하나로 두 사람의 얼굴을 가리고도 남을 정도다. 꽃은 여름에 피는데, 담홍색이다. 마치 나팔 모양의 꽃이 원줄기 끝에 옹기종기 피어난다….’

어아니 벙벙한 상태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던 젊은 여자가 ‘신문’을 바라보며 탄식 같은 질문을 한다.

“朝鮮日報-아저씨, 저는 꽃을 특히 좋아하고, 웬만한 꽃은 다 알고 있는 편입니다. 그런 제가, 이 ‘담배-꽃’을 전혀 몰랐던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신문’이 담배연기로 길게 한숨을 뿜어 올린다.

“젊은이가, 이 꽃을 모르는 것은, 오히려 정상인 것 같네. 그 이유는 간단해. 보통 식물들은 꽃이나 열매를 위해 잎이 존재하는데, 담배는 그 정반대지. 담배란 식물은 꽃 또는 열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야. 오직 잎을 수확하는 것이 목표지. 담배의 원료가 되는 것이 담뱃잎이야. 때문에, 잎을 위해 꽃이 희생되는 구조이지. 잎을 위해 꽃은 피기도 전에, 꽃봉오리가 맺히기도 전에 꺾어, 희생을 시키는 것이야.”

두 젊은이의 입이 동시에 벌어진다. 여자는 입술까지 파르르 떨고 있다. 잠시 침묵을 즐기던 신문의 말이 이어진다.

“그래서, 담배꽃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야. 사실, 담배꽃은 피기도 전에 꺾어 주기 때문에,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꽃이기도 하지. 이제, 좀 이해가 되나?”

젊은이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젊은 여자가 ‘신문’에게 다시 속삭인다.

“朝鮮日報-아저씨, 그럼, 이 꽃도 ‘꽃-말’이 있어요?”

‘신문’이 오른손 엄지를 곧추세우며 다시 말을 잇는다.

“당연하지. 꽃말은 <그대 있어 외롭지 않네>야.”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향해 감탄사를 터뜨린다.

“오, ‘그대 있어 외롭지 않네’. 담배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꽃말 같다.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젊은 남자의 입에서도 한마디가 터진다.

“아, 담배를 사랑하는 그대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네.”

순간,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담배-꽃에 앉으려고 하는지, 허공을 계속 맴돌고 있다. 흐뭇한 눈으로 두 젊은이를 지켜보던 ‘朝鮮日報’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여기, <흡연구역>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담배-꽃’이야. 그가 남자든, 여자든 구분 없이, 모두 ‘담배-꽃’인 셈이지. 자네들도 담배-꽃이고, 나도 담배-꽃. 결국, 이 <하얀 감옥> 안에서는, 사시사철 꽃이 피어나는 셈이지. 바로 ‘담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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