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상] 연
[수필 동상] 연
  • 경북일보
  • 승인 2018년 11월 26일 07시 07분
  • 지면게재일 2018년 11월 26일 월요일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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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김진혁작
연이 날아오른다. 실패의 실을 감았다 풀었다 반복하며 바람을 조율하던 찰나 연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제 몸에 중심을 잡는 것도, 처음 만나는 세상도 연에게는 모든 순간이 낯설다. 하늘을 콕콕 찔러도 보고, 바람에게 제 몸을 맡겨보기도 한다. 곧이어 불어오는 바람이 좋은지 연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더 높이 올라가보겠다는 말이다.

실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연, 가을 하늘과 맞닿아 한 폭에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실패를 넘겨주고 사진을 찍으며 이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나와 아이들이 처음 만든 연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날개가 비뚤비뚤 잘린 것도, 태극 모양에 색칠이 튀어나온 것도 하늘 높이 올라가니 보이지 않았다. 가끔 사물과 대상은 이처럼 멀리서 바라볼 때가 더 아름답기도 하다. 연을 바라보며 연이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달이 차올라 달력을 찢었다. 다시 1일인 것이다. 비워진 달을 바라보며 이달을 미리 그려보았다. 2학기가 시작되고,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수많은 새로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찢어진 지난달도 가만히 펼쳐 보았다. 그리고는 아들의 발가락이 부러져 병원을 다닌 날도, 남편의 휴가도, 엄마의 생신도, 폭염 속에 들끓던 무더위도 이제는 추억할 수 있었다. 지난날을 뒤집었다. 하얀 바탕만 내 눈앞에 펼쳐졌다.

세모를 접고 주변을 잘라 마름모를 만들었다. 밋밋했던 하얀 바탕에 아이들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잠시 고민하는 아들, 동그라미 속에 물결을 그려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동그라미 속을 메우기 시작했다. 대나무 살을 달력이 접힌 부분에 놓고 테이프로 붙이고, 다른 하나는 살을 겹쳐 반원을 그리며 붙였다. 남은 달력을 잘라 날개를 길게 이어 붙이고 구멍을 뚫어 실을 연결했다. 균형이 맞는지 실을 잡고 달력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그 순간 나도 아버지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연을 흔들고 있음을 알았다. 어릴 적 아버지가 내게 만들어준 연이 떠올랐다.

늘 아버지 턱 밑에 앉아 있던 나였다. 연이 빨리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며 아버지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며 때를 기다렸다. 지금 아이들의 모습과, 내 어릴 적 모습이 대나무 살이 겹쳐지듯 포개어졌다. 항상 연을 만드는 데는 달력을 따라올 종이가 없다 하며 지난달의 달력을 귀하게 여기셨다. 비록 예쁘지도 않고 모양도 없지만 잘 찢어지지도 무겁지도 않으며, 크게도 작게도 만들 수가 있다 하였다. 연을 만들 때는 전화가 와도 받지 않고 식사도 늦추며 연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버지, 연과 교감이라도 하였던 것일까.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 얼굴에는 표정하나 없이 짙은 그늘만 드리워져 있었다. 아버지에게 연은 단순한 장난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은행에서 받은, 숫자가 큰 달력이었다. 그 속에는 중요한 날을 의미하듯 빨간 동그라미도 있고, 빼곡하게 적힌 거래처와의 거래 내역이 적혀 있었다. 손이 바쁜 일을 하며 매번 수첩을 펼치고 넘기는 작업이 번거로웠던 아버지,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달력에 아버지만의 표시를 해두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아버지는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들여 만든 기계부품들을 제 날짜에 맞춰 배달하였다. 날짜를 맞추기 위해 밤을 새는 날도 여러 날, 일을 하느라 하루치 끼니를 거르는 것도 아버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하루의 젊은 날 이력들을 달력에 흩날려 쓴 아버지, 그 수많았던 날들 중 빈 여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저 하늘에 연처럼 항상 높은 하늘만 보며 오래 날수는 없었다. 한순간에 바람이 불지 않아 뚝 떨어지기도 하였다.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날은 거래처 수금을 하는 날이다. 월급봉투를 손에 쥔 날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며, 아버지 얼굴에도 잔물결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달이 거듭되어도 수금되지 않는 곳이 많아지자, 빈 봉투만큼이나 아버지 마음도 쪼그라들었다.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주문한 만큼 물건은 만들어야 했고, 재료를 구입할 돈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여기서 그만 두어야 할지,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해야만 할지 아버지는 연을 만들며 고민을 거듭했다. 아버지의 소망일까.

연은 날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언덕을 아무리 힘껏 뛰어도, 실패를 당겼다 풀어도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짐을 알았다. 연을 붙잡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가만히 서서 버티는 시간을 보냈다. 주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세상이 어떻게 변했다고 말하든 아랑곳 하지 않았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바람이 불어 언젠가는 날아오를 것이란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는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기계부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버지를 보며 십 수년째 거래가 이어지고 있음을 말이다. 폭이 5cm, 자동차 핸들 크기만 한 철에 정교한 구멍을 찍어 돌돌 말아 겹쳐 놓은 아버지의 시간들이 아직까지 팔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정교함은 기계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미래가 불확실한 한 가지 일에 40년의 시간을 버티기가 쉬운 일이었겠는가. 모두가 포기하라며 말할 때, 아버지는 그것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라 하였다. 수없이 흔들리고, 불안하고, 힘이 든다면, 무엇이든 배우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기다리고 버텨보라며, 성공과 실패는 생이 끝나는 날까지 모르는 것이라 했다.

나에겐 버티며 기다려볼만한 무엇이 있던가. 그 하나가 있다면 지금 연실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잘 살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하늘을 보고 바람이 부는 방향 그대로 실패를 당겼다 풀었다 반복해보자. 어떤 일이든 손에서 놓지만 않는다면 마음속에 있던 그 연도 언젠가는 높은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연이 힘차게 날아오른다. 날개를 파르르 떨며 더 높이 올라간다. 난 아이들의 손을 쥐고 실을 잡았다 당겼다 하며 바람이 부는 데로, 연이 올라가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태극 모양이 점점 작아졌다. 아이들과 나의 눈에 한가득 가을 하늘이 담긴다. 눈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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