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책상 서랍에는
이십대 초반에 쓴
이력서가 잡동사니들과 쌓였다

그의 이력에는
출생과 전자고 졸업이 몇 줄 엎드렸지만
그의 블로그 ‘살롱’에는
소월과 휘트먼, 우암과 플라톤
박헌영과 애덤스미스의 얼굴이 자정까지 너울거린다

달콤한 저녁밥을 받아먹고
몸통이 굵어진 눈꺼풀을 떠받치기보다
공사장 잡부가 더 쉽다고 그는 중얼거리며
9시 뉴스도 못보고 퍼드러진다

새벽이 산과 하늘의 경계선을 판각하면
마음 한 곳이 절단된 홀아비, 삼촌을 쓰다듬고
고물 트럭에 시동을 걸며 그는 생각한다
요즘 밤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어차피 꿈이라고





<감상>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이십대 청년의 꿈은 짓밟히고 있다. 자본을 가진 자들은 있는 일자리마저 독식하므로 청년들은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도 지불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이력서가 낡은 서랍에 쌓여가고, 문학과 개혁과 이상은 사라지며,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채 공사장 잡부가 되고 만다. 노동에 찌들고 가난은 면치 못하므로 3포, 5포, 7포(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라는 암울한 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가 요동칠 때 애덤스미스처럼 기본도덕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를 활성화하여 일자리를 늘리고, 청년들이 취업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길 학수고대해 본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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