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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환 문경지역위원회 위원·문경문협 회장
71세 연세에도 청춘같이 사과농사를 짓는 아재는 이것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아재가 농사지은 사과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해 보인다. 실제 먹어도 맛있는 것은 물론이다.

소둔산 기슭 3만여㎡ 과수원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으니까, 50년은 족히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 마을의 선각자였던 할아버지가 만든 사과밭이다. 당시 이 마을에는 비알밭에 특수작물로 담배농사를 지었고, 대부분 콩팥을 심었다. 그런 밭에 사과나무를 심었다니 처음엔 모두 의아해했을 것이다. 몇 년 지나야 사과가 달리기 때문에 당장 소출이 없는 일을 하셨으니, 하루가 고달팠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뭐하는 짓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수원이 시발점이 되어 현재 이 마을 대부분이 과수원이 되었고, 문경시내 1500 농가가 사과농사를 지어 ‘문경사과’라는 상표까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이 사과밭을 장남인 아재에게 물려주면서 집에 붙들어 두셨는데, 혈기 왕성하고 친구들이 모두 객지로 나가는 것이 쓰나미 같은 조류였을 때, 왜 아잰들 흔들림이 없었으랴. 흙투성이에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행색조차 뽀대나지 않을 때, 왜 아잰들 나가고 싶지 않았으랴.

하지만 우리가 멀리서 보기엔 아재는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이 일을 천직으로 알며 참으로 흙처럼, 사과나무처럼 정직하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사시는 것 같았다. 이 마을뿐 만 아니라, 시내 어떤 사과농민보다 좋은 품질의 사과를 생산했고, 양도 많아 집도, 창고도, 사과밭의 농막도 때깔이 좋았다.

그러나 나는 아재의 그런 외형보다 언젠가 아재 집에서 술을 한잔 할 때 속을 내보이며,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는데 항상 주목했다. 영농일지 삼아 쓰는데, 그 안에 소중한 일상의 것들도 갈피에 넣어 놓는다고 했다.

그런 중에 나는 살기가 팍팍해졌고, 이 마을에서 떠났으며, 한동안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것이 10년은 족히 됐을 어느 날, 아재가 전화를 하셨다. 붓글씨를 배우고 싶은데, 좋은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붓글씨는 아재와 매우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아재도 바쁜 형편이라, 접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어울림에 가까이 가시겠다니, 두 발을 벗고 안내해 드렸다.

그것이 3년 전쯤인데, 마성면지를 편집하면서 아재가 생각났다. 아니 아재의 일기가 생각났다. 1980년부터 기록한 일기라면 40년 어간의 대소사가 다 기록돼 있을 터였다. 그래서 이를 공개해 달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쳤다. 그럼 아재가 공개해도 좋을 내용만 추려달라고 했더니 간략하게 연도별로 적어 주셨다.

그 속에서 내 가족사의 궁금증이 해소되기도 했다. 같이 살던 외할머니 돌아가신 때가 생각나지 않았는데, 아재 일기장에 ‘1983년 5월 14일 우리실 아지매 별세’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날 할머니 임종에 즈음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그 후 6년만인 5월 14일은 나는 결혼했는데,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또 하나는 어머니의 회갑잔치를 집 마당에서 열었는데, 그 날도 생각나지 않아 여러 번 이 날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던 터에 ‘1986년 1월 23일(음력1985년 12월 3일) 고실 누님 회갑’이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때는 내가 직장에 취직해 만 1년을 지난 27세 되던 때였는데, 직장 사장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부조도 하시고, 식사도 하셨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지금은 나도 몇 년째 일기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일기장 앞에 서는 밤이면 오늘 하루 내가 뭘 했는지 막막할 때가 있다. 바둑 두고 복기할 때 고요해야만 복기가 가능한데, 일기를 쓸 때도 그와 같아서 고요히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 먹고, 나가고, 누구와 만나고, 하나하나 짚어보는 일이 또렷하지 않다.

그런데 어찌 적어놓지 않고 그제 일을 알 것이며, 한 달 전 일을 알 것이며, 일 년 전 일을 알 것인가? 누구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까이거 지나간 것 알아서 뭐할 거냐고….

하지만 100년도 못 사는 내 삶을 복기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너무 허망할 것 같다. 오늘의 내게 어찌 어제가 없을 수 있으며, 오늘의 나는 무엇으로 바르게 하고 살 것인가? 어제의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고치고자 하는 복기. 그것은 일기뿐이란 것을 아재의 일기를 대하면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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