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을 지키는 것과 사랑함
계율을 지키는 것과 사랑함
  • 박헌경 변호사
  • 승인 2018년 12월 10일 17시 42분
  • 지면게재일 2018년 12월 11일 화요일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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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경 변호사
시린 하늘 아래 연분홍 홍시가 가지 끝에 홀로 붉어가는 초겨울날이다. 마지막 잎새에 이는 겨울 찬바람 속에 밤은 깊어가는데 스님들은 선방에서 동안거가 한창이다. 안거(安居)는 산스크리트어의 바르시카 즉 비(雨)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인도에서는 하절기 90일간은 우기(雨期)여서 수행자들이 외출할 때 자신도 모르게 초목이나 작은 벌레를 밟아 죽여 금지된 살생을 범하게 되므로 그 기간에는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앉아 좌선수학(坐禪修學)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우기(雨期)의 수행을 안거(安居) 또는 하안거(夏安居)라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하안거와 함께 동안거(冬安居)도 행하여졌는데 동안거는 음력 10월 16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 90일간이다. 안거의 시작은 결제(結制)라 하며 안거의 끝은 해제(解制)라고 한다.

큰스님들은 안거를 마치면서 해제 설법을 하신다. 법정 스님은 2010년 길상사에서 입적하시기 한 달 전에 마지막 동안거 해제 설법을 하셨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 시점에 가슴에 와 닿는다. 법정스님은 ‘법문이 끝난 후 바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법회에 대한 모독이다. 세상이 어려울 때는 절이나 교회 또한 어려움을 나눠야 한다. 세상이 나아질 때까지 불사를 받지 말아야 한다. 종소리가 좋고 곱고를 따지기 전에 종소리에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가, 있지 않은가가 문제이다’라고 하셨다. 교회와 사찰이 대형화되고 세속화되고 안락해져 가는 현재 종교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 같다. 참종교는 핍박받고 헐벗고 굶주림 속에서야 제대로 꽃필 수 있다.

스님들이 안거를 하는 것은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고 좌선수행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다. 계율이란 불교 수행자가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계를 명문화하여 구속력을 부여한 것인데 승려나 불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그중 5계는 ①살생하지 말 것. ②도둑질하지 말 것. ③사음하지 말 것. ④도둑질하지 말 것. ⑤술 마시지 말 것 등이다. 비구는 250계를 받고 비구니는 348계를 받는데 계율을 지킴으로써 불꽃처럼 타오르는 번뇌를 끊고 고요한 참나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평범한 나로서는 5계조차도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

계율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두 스님이 시주를 마치고 절로 돌아가던 중에 냇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시냇가에 한 아리따운 여인이 물살이 세고 징검다리가 없어서 냇물을 건너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 스님은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아니되니 여인을 두고 서둘러 시내를 건너자고 했다. 그러자 다른 스님은 그럴 수 없다며 여인을 등에 업어 냇물을 건네준 후 두 스님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러자 조금 전에 여인을 업어주지 않은 스님이 화난 목소리로 “수도하는 몸으로 여인의 몸에 손을 대다니 자네는 부끄럽지 않은가? 자네는 단순히 그 여인이 시내를 건널 수 있게 도왔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신성한 계율이라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라고 심하게 질책했다. 두어 시간쯤 잠자코 계속 잔소리를 듣던 다른 스님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이 사람아 나는 벌써 두어 시간 전에 그 여인을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 여인을 등에 업고 있는가?”라고 말했다.

계율은 진리로 가는 길이므로 계율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고 구도자들은 작은 계율조차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계율을 뛰어넘어 계율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계명이다. 시냇물을 건너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여인의 어려움을 측은지심으로 등에 업어 건네준 것이 곧 사랑이다.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계율은 비록 어겼으나 자비심으로 여인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으니 이는 곧 사랑으로 계율을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나의 계명은 오직 하나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나는 일자일획도 율법을 어긴 일이 없고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였다’고 말씀하신 이유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비록 원수라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은 끝없는 악업을 낳고 미움을 낳고 전쟁을 낳는다.

사람과의 관계이든 국가간이든 적대와 미움과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은 옳고 그름의 분별심을 버리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사랑뿐이다.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만간 방남할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안보를 굳건히 한가운데 시비분별의 집착을 뛰어넘어 김정은 위원장 일행을 사랑으로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함으로써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지배계층의 마음을 녹여 변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방남했을 때 남한의 자유, 민주, 인권, 경제발전 등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더 많이 보게 하고 더 많이 알게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헐벗고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압제와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길이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의 종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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