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도 끼고 군데군데 금 갔다
꼭대기 층 한 귀퉁이는 떨어져 나갔다
떨어져 나간 곳을 푸른 하늘이 채우고 있다
도굴과 훼손과 유기의 질곡을
온몸으로 받들고도 꼿꼿이 서 있는 것은
견디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오래 견딘 침묵은 좀
깨지기도 해야 아름다웠다
고난의 상흔도 보여야 미더웠다
언제부턴가 온전한 것이 외려
미완이란 생각이 든다
깨진 곳을 문질러 가슴에 갖다 댄다
이루어지는 것 드물어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가슴 층층에 쌓여
바람 부는 폐사지에 낡아 가고 있다면
당신도 나도 다 탑이다

<감상> 탑이 우리네 인생과 같네요. 시인은 깨지고 상처받는 삶을 고스란히 탑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깨지기 때문에 침묵으로 견딜 수밖에 없으니 우리네 마음속에 하나씩 탑을 쌓고 있는 것이지요. 견디기 위해서는 기단을 넓고 탄탄하게 쌓아야 합니다. 곧 밑동이 넓어야 탑신을 높이 쌓을 수 있으니까요. 살면서 모난 얼굴을 하고 있어야 푸른 하늘이 채워지고 햇살과 바람도 놀러 오는 것이 아닙니까. 온전하고 성형된 얼굴이 되레 미완(未完)이고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정감이 가지 않으므로 누군들 머무를 수가 있겠는지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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