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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15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사람은 하늘이다’고 외쳤다. 사람이 하늘처럼 대접받는 사회였다면 나올 수 없었던 외침이다. 사람이 버러지보다 못한 존재로 격하된 세상에서 고통받던 조상들이 “사람은 하늘”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사람은 하늘이다’는 말은 깊은 철학을 담고 있는 말이겠지만 필자는 그 깊이를 가늠할 힘이 없다. 다만 ‘사람은 하늘처럼 존귀하다’, ‘사람답게 하루라도 살아보자’는 절규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뿐이다.

124년 전에 삼남 지방에서 일어난 동학혁명이 조선 팔도를 휩쓸었다. 흙과 씨름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낫과 죽창을 들고 관군과 전쟁까지 벌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람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사람으로 살 수 없도록 몰아가는 조정과 부패세력, 외세에 맞서 싸웠다. 농민들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세월이 120년 넘게 흘렀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도시빈민과 서민들은 당시 농민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한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손에 쥔 건 없고 몸 편히 누일 주거 공간 하나 없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는 고달프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토지와 주택은 어느 개인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인데 일부 계층이 토지와 주택을 독점하여 다수를 고통에 빠트리는 사회가 되었다.

고 박준경은 생전에 서울 아현동 재건축 현장에서 스무 번 넘게 강제 집행을 당했다. 말이 좋아서 강제 집행이지 실제는 폭력으로 쫓아내는 야만적인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는 아현동 재건축 단지에서 10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 곳은 내 삶 터요. 건드리지 마시오!”하고 소리칠 자유도 권리도 없었다. 오직 자유가 있다면 쫓겨날 자유만 있었다. 법이라는 이름의 폭력 앞에 ‘주거권은 신성한 것이오!’ 하고 외치는 건 단지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그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삶을 마감한다고 했다.

헌법에 규정된 평등권과 자유권은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는다면 ‘종이 위의 평등’에 불과하다. 헌법에서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 실현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박준경이 죽음에 내몰리는 과정을 보면서 평등권도 자유권도 헌법상의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도 장식물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며칠 전 아현 재건축 구역을 가보았다. 곳곳에 상흔이 남아 있었다. 집들이 일부 남아 있었는데 집 상태를 볼 때 앞으로도 5년, 10년, 15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옆 구역은 재개발이 해제되었는데 사람들이 잘만 살고 있었다. 나가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을 내쫓고 멀쩡한 집을 파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존의 집을 헐고 다시 짓는 걸 재건축 또는 재개발사업이라 한다. 재개발 할 때는 전체 세입자의 15% 정도에 불과하긴 하지만 임대주택을 제공받기 때문에 최소한의 주거안정을 누릴 수 있다. 재건축할 때는 민간사업이라는 이유로 세입자에게 어떤 권리도 주지 않는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재건축은 세입자에게 권리를 박탈하는 탓에 더 큰 충돌이 일어나고 더욱 폭력적인 강제 퇴거가 강행된다.

집과 주거권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빼앗은 주거지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사람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재건축, 재개발 현장엔 사설 폭력이 난무한다. 용역깡패라 불리는 사설 폭력단이 폭력을 휘두르지만 지자체도 경찰도 모른 체 한다. 재건축, 재개발 구역에선 ‘국가’는 안보이고 건설사와 개발 추진 세력이 권력기관 행세를 하면서 인권을 유린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주거권을 파괴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주거현장의 반인권 행위가 계속 용인된다면 제2, 제3의 박준경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비극을 끝내야 한다. 강제퇴거방지법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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