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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성일 편집부국장
대한민국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만든 ‘법’(法)이 불신을 받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인간은 원시시대를 지나 공동체를 이뤄 살면서 규칙이 필요했다. 공동체는 도시에서 거대한 국가를 이루며 날로 확장됐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던 인간은 인간들만이 집단을 이루는 공동체 삶을 선택하면서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법’이 탄생했다. ‘법’은 일정한 예의범절의 도덕 수준에서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공동체 삶을 위협하면서 그 욕망을 제어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욕망이 다양해지면서 법의 그물도 그만큼 세밀해졌다. 복잡 다양한 법을 운용하기 위해선 전문인이 필요해졌다. ‘법관’이 그들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 ‘인간’의 행위를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법관’은 중세시대 성직자와 같이 ‘신의 영역’을 대리하게 됐다. 그래서 법관은 신의 경지에 도달할 만큼의 높은 도덕과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어쩌면 법이란 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함께 행복한’ 생을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의 선물’인 ‘법’을 운용하는 법관들은 ‘신의 대리인’인 셈이다.

그 대리인은 늘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판결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법관’이 법을 ‘사유화’ 한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국민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법을 대리하는 법관들이 법을 인간의 행복 추구가 아닌 정치적 사익을 위한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법의 거래’는 법관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그치지 않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법관이 공정한 판단을 하지 않고 법을 자신의 이익 추구 도구로 사용한다면 법뿐만 아니라 국가 근간이 위협받게 된다. ‘절대 공정’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법을 사유화하는 것은 반드시 근절돼야 할 일이다. 국가의 안위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이러한 일부 법관의 일탈로 ‘법대로 하자’는 말이 억울한 일을 바로잡는 데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운명을 왜곡시킬 ‘가장 위험’하고 ‘어리석은 말’이 된다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

공정한 사법제도로 세계 대국으로 성장한 네덜란드의 사법제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이룬 초석 중 하나는 네덜란드의 사법제도였다.

이는 인류와 문명의 발전사를 기술한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에도 언급돼 있다.

네덜란드가 해상권을 장악하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선봉 역할을 한 것은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종합 무역상사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였다. 동인도 회사는 주식과 채권을 팔아 모은 자금으로 신형 배를 건조하고 선원을 교육하고 용병을 채용해 무적의 위용을 갖춰 항해에 나섰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사람들은 기꺼이 동인도 회사에 투자하고 돈을 빌려줬다. 투자자들은 투자한 네덜란드 회사가 정당하게 이익을 배분하지 않거나 채무 불이행으로 불이익을 당하면 네덜란드 사법당국에 판결을 의뢰했다. 네덜란드 사법당국은 네덜란드 정부나 동인도 회사 같은 권력에 휘둘리거나 재계와 결탁하지 않고 정당하게 판결했다. 네덜란드 사법기관은 유럽 사람들로부터 확고한 신뢰를 얻었고 이는 왕권이 우선하는 권위적인 스페인의 국채나 영국회사보다 네덜란드 회사로 투자를 이끌었다. 중심이 잡힌 사법제도와 공정한 사법 판결은 자체 역량이 부족한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세계를 주름잡았던 대국이 될 수 있게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도 사법기관이 신뢰를 회복해 국가 발전과 국민의 행복 추구에 나서길 소망한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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