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때 독일은 전쟁이 시작되기 8년 전부터 참모총장 몰트케의 지휘 아래 모든 작전을 세워놓았다. 이를 작전을 짠 핵심 인물 슐리펜의 이름을 따 ‘슐리펜 계획’이라 불렀다. 슐리펜은 서쪽의 프랑스를 먼저 공격기로 했다. 빨리 프랑스를 정복한 후 서부전선의 군대를 동부전선으로 이동, 러시아를 제압하는 속전속결 전략이었다. 1차 대전이 터지자 독일은 8주 이내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슐리펜 계획’은 쓸모가 없어졌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의 강력한 저항으로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러시아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독일 국경에 당도했다. 독일은 ‘슐리펜 계획’의 실패를 자인했다. 전세가 뒤바뀌자 영국과 프랑스는 4~5주 내에 독일로 진격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연합군의 예상도 빗나갔다. 양쪽 모두 전진하지 못하고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양쪽 병사들은 깊은 참호를 파고 숨어서 교전하는 참호전이 벌어졌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성탄절인 크리스마스를 맞게 됐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캐럴에 양쪽 병사들은 모두 고향과 가족을 생각하는 향수에 잠겼다.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던 벨기에의 이프르 전선에도 캐럴이 울려 퍼졌다. 양 진영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촛불을 밝혔다. 12월 24일 밤, 양쪽 병사들이 부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캐럴이 경계를 넘어 서로의 진영까지 들려왔다. 한쪽이 먼저 노래하면 다른 한쪽이 화답, 캐럴 송 릴레이가 벌어졌다.

독일 병사들이 하나 둘 참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독일 병사들이 외쳤다. “쏘지 마. 쏘지 마. 휴전하자” 영국 병사들도 “그래, 휴전하자” 쌍수로 환영했다. 양쪽 병사들은 서로를 향해 걸어가 마주 섰다. 독일 병사들이 영국 병사들에게 맥주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넸다. 영국 병사들은 답례로 식량과 담배를 선물했다. 양쪽 병사들은 서로 포옹, 크리스마스 평화를 한껏 즐겼다.

이날의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 평화 축제는 신문 1면의 머리기사로 대서특필됐다.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수혈전을 끝내는 성탄절이 됐으면….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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