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紳士)의 나라’라고 불리는 영국에서도 여성 경찰관들이 직장 내 성적 괴롭힘에 시달리는 일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 신문인 가디언이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25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영국에서 여성 경찰관이 동료나 상관으로부터의 성희롱 피해를 봤다고 신고한 사례는 450건에 달했다.

가디언은 정보공개 청구 대상인 43개 기관 중 런던경찰청 등 15곳을 제외한 28곳만 자료를 내놓았다며 영국 경찰 전반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문제는 이번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일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영국공공부문노조(Unison)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약 1천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가량의 응답자는 동료로부터 성적인 농담을 들었고, 5명 중 한 명꼴은 노골적인 내용의 이메일이나 문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약 4%의 응답자는 강제로 성관계까지 가졌고, 8% 정도는 성적인 호의가 특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조사를 맡았던 런던정경대(LSE) 경제학부 부설 만하임 범죄학센터의 제니퍼 브라운 교수는 여성 경찰관이 겪는 성적 괴롭힘을 영국 경찰 내의 “숨겨진 문제”라고 진단했다.

브라운 교수는 “성희롱은 경찰처럼 제복을 입는 곳에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그 배경에는 남성 직원이 더 많은 일터의 특성과 여성이 남성의 고유영역을 침범한다는 생각이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경찰에서는 현재 여성 직원 비율이 29.8% 수준이고, 전체 여성 경찰관의 17.7%(6천463명)는 경사 이상 간부다.

영국 경찰 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사건이 적지 않지만 쉬쉬하는 직장 분위기 탓에 가해자에 대한 제재는 미미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6년간 성희롱 혐의가 드러나 징계를 받아 해고된 사람은 24명에 그쳤고, 48명은 비위 의혹이 제기된 뒤 해고를 피하는 방법으로 연금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길을 택했다.

브라운 교수는 성희롱이 경찰 조직 내부의 문제로 처리돼 징계위원회 회부 전에 가해자가 사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런 허술한 제도를 뜯어고쳐야 하는데 경찰 상층부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줄리언 윌리엄스 영국 경찰청 윤리위원장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인) 경찰 내의 성희롱은 근절돼야 한다”며 성적 가해자에게 직위해제 등 가장 강력한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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