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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연하장이 범람하는 즈음이다. 모바일 기기의 발달로 소위 단톡(단체 카카오톡)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가 하면 단체 문자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달되기도 한다. 우체국에 가는 번거로움 없이 쉽게 새해 인사를 대신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예의를 중시해왔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이 당연하고 부하 직원 또한 상사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표식 중 하나가 인사를 잘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예의를 중요시하고 윗사람 공경하기의 대가인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 외국인들은 표정이 없다거나 잘 웃지 않는다 등의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산책길이나 동네 골목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유난히 밝은 고음으로 인사를 잘했던 것도 같다. 그러니 우리도 질 수 없지 않은가. 하물며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국민인데….

어느 날 정년을 앞둔 한 선생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젊은 청년이 타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는데 그 청년이 인사를 하지 않아 기분이 조금 상했다. 1 층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어 나오면서도 내내 기분이 언짢았고 그 기분은 종일 지속되었다. 그런데 한참 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청년이 인사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연장자라 하더라도 먼저 인사 한마디 건네면 될 것을 그리하지 못한 데 대해 후회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는 엘리베이터건 어디건 그 누가 있더라도 먼저 인사를 건넨다는 것이다. 그리하고 나니 온종일 기분이 좋고 상대방 또한 그렇게 대해 주더라는 것이다.

인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대체로 그놈 참 잘 생겼네, 라는 말로 인사를 했는데 누구나 좋은 덕담으로 여겼다. 사업가 한 분은 어렸을 때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옆에 선 노신사 한 분이 “그놈 참 잘 생겼다. 앞으로 큰 사람 되겠어”라고 생전 처음 보는 그에게 인사를 하더라고 했다. 그 후로 그분은 정말 사업가가 되었고 그 노신사의 말이 오랫동안 좋은 에너지가 됐다고 했다. 이제 스스로 노신사가 된 그 사업가는 간혹 아이들에게 그놈 참 잘 생겼다…라고 인사를 한다고 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리라. 자기가 받은 좋은 에너지를 다시 누군가에게로 전해주면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는 아름답게 이뤄지고 가꿔지는 것이리라.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먼저 건네는 인사를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덕담을 싫어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다만 최근 언어의 유희가 엉뚱한 데로 흘러 남을 비하한다거나 자기를 자학하는 말들이 오히려 주목을 받기도 할 때가 더러 있다. 연하장에는 정중하고 고운 말이 아니라 은어나 비속어가 섞인 말들이 난무하고 젊은이들이 붐비는 거리에 나가면 반쯤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계어 같은 말들을 떠다닌다. 구십 도로 허리 구부려 인사하는 사람은 천연기념물 즈음으로 취급당하고 어른들과 같이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구시대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타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제일 잘 구상하는 사람은 박수를 받고 남을 잘 무시할 줄 아는 사람은 차별화된 리더로 인정을 받는다.

시대가 바뀌었으나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고 부모님을 빌어 이 땅에 왔다. 인사 한마디 잘 해주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는데 그게 무어라고 그렇게 아끼려 드는 걸까. 지난해 나에게 온 행운이 무엇이었던가를 돌이켜 보기 전 얼마나 인사를 잘하고 살았는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 한 시인은 아침에도 굿 모닝, 저녁에도 굿 모닝, 한다는데 그 어떤 말이면 어떤가. 오늘은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인사해 보자. 그러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하다. 당장 한 번 확인해 보라.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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