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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응식 작 '구직'
우리나라 사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 있다. 한국 예술사진의 태두 임응식의 ‘구직(求職)’이다. 큼직한 한 장의 종이에 ‘求職’이란 붓글씨를 써서 허리에다 질끈 동여맨 청년이 축 처진 어깨로 힘겹게 벽에 기대선 모습이다. 서울 명동에서 촬영된 이 사진 속 청년은 남루한 야전 점퍼 차림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채 체념한 듯 서 있다.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이 있던 해인 1953년의 작품이다. 이 사진은 전쟁 이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처절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구직’은 그 이전까지 사진계에 유행해 온 ‘살롱 사진’ 사조와의 결별을 알리는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당시엔 고상한 자연 풍경을 앵글에 담아 신파조의 제목을 붙이는 것을 지고한 예술로 여겼다. 그러던 것이 임응식의 이 작품에서부터 생활 속의 모습을 담아내는 ‘생활주의 리얼리즘’으로 사조의 전환이 시작됐다.

1953년은 격변기였다. 새해 벽두인 1월 9일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세월호 사건과 비견되는 ‘창경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다. 배에 탄 사람 중 8명만 살아남고 3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였다. 6월에는 남북 포로 교환협상이 조인되고, 7월 27일에는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8월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부산에서 서울로 비로소 환도 되기도 하는 등 전후 격동의 시기였다.

이러한 격변기 거리에 나선 구직자의 모습을 담은 리얼리즘 사진 ‘구직’을 떠올리는 것은 이 시대 청년들이 당시 전후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취업이 하도 어려워 실제로는 취업을 포기했으면서 입으로만 ‘취업 준비 중이야’라고 말한다는 ‘아가리 취준생’, 일반기업과 공무원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는 ‘공취생’ 등의 유행어가 등장한 지도 오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대학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1%만 정규직에 취업했을 뿐 79%가 취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을 다 포함해도 취업자가 2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졸업이 곧 실업’인 대졸자가 열에 아홉이라니 청년이 길거리에서 직업을 구하던 1953년 전후의 양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청와대의 일자리 현황판은 잘 있는 지 궁금하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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