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되는 농사 부농 꿈 자란다-울진 ‘산중가’

산중가 용창식(사진 왼쪽), 이영애 부부.
“100세 인생의 전반전을 도시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면, 인생 2막의 무대는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 제대로 된 농부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숨 쉬는 땅 여유의 바다가 넘실거리는 청정 울진에서 절임배추 판매로 신입 농부 출사표를 던진 뒤 각종 발효 음료를 연이어 선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용창식(55)·이영애(54) 부부.

그런데 이들은 농부가 되기 전 독특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남편 창식씨는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 합격을 꿈꾸며 10년의 세월을 보낸 뒤 특기를 살려 영어학원을 운영했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부인 영애씨 역시 20여 년 세월 동안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산중가에서 판매하는 절임배추 작업 모습.
도무지 농촌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들이 흙을 밟으며 농사를 지으려 한 까닭은 뭘까?

올해로 귀농 10년 차를 맞은 부부지만, 사실 먼저 용기를 낸 사람은 남편 창식씨다.

평소 묵묵히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농촌 생활을 동경해왔다.

창식씨는 부인에게 “과감히 모든 걸 정리하고 먼저 1년만 살아보자”고 제안했고, 영애씨는 “그저 사회생활에 지친 남자의 일탈일 것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들의 귀농은 시작됐고, 1년이라는 시간을 값지게 보낸 창식씨의 모습을 지켜본 영애씨는 미술학원을 정리하고 그를 따라 울진으로 터전을 완전히 옮겼다.

△초보농부의 귀농생활

창식씨는 고향이 울진이지만 어려서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공부만 한 탓에 사실 농사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마흔일곱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막상 농사라는 단어만 알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울진군농업기술센터가 주관하는 ‘녹색 대학’에 입학했다. 녹색 대학에서는 과수를 비롯해 특용작물, 양봉 등 다양한 농사를 배울 수 있다.

마을 사람들과도 친화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선후배들과 잠시 서먹했지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막걸리 한잔을 나눠 마시며 마음을 열었다.

그야말로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탓에 농사지을 땅만 있다면 작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데로 지었다.
산중가를 찾아온 손님에게 꽃차를 선보이는 이영애 대표.
영애씨는 “한 해는 감자를 심었는데 너무 농사가 잘돼 200박스를 생산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면서 “그런데 기쁨은 잠시였다. 1박스가 2만 원 남짓에 팔리면서 전체를 다 팔아야 400만 원에 불과했다. 노동에 비해 너무나 소득이 없는 현실에 실망이 깊었다”며 농사는 풍년이 대박이라는 공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들은 1차 농산물은 유통변화에 따라 가격이 들쑥날쑥한 만큼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차 생산에서 2차 제조업 그리고 3차 서비스업을 복합한 6차 산업을 추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이 바로 절임배추다.

직접 재배한 배추를 깨끗한 1급수에 씻어 3년간 간수를 뺀 천일염에 절여 완전 상품화를 시킨 것이다. 판단은 적중했다. 소비자는 재배부터 세척, 그리고 절임까지 모든 과정을 한눈에 보고 믿을 수 있는 상품에 즉각 반응했다.

출시와 함께 절임배추는 완판됐고, 매년 물량을 늘려오고 있지만 이마저도 선착순으로 해야 할 지경이다.

△브랜드 산중가는 자연을 간직한 상품 판매
산중가에서 판매하는 야생칡즙.
산중가에서 판매하는 프리미엄 꽃차세트.
일찌감치 가공식품에 눈을 뜬 부부는 절임배추를 비롯해 도라지, 돌복숭아, 산야초 발효액 등을 특화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향기 그윽한 국화와 목련차, 건강을 생각하는 도라지, 돼지감자, 무, 우엉차 등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판매 품목 중 목련차는 인기가 높아 예약하지 않으면 구매가 쉽지 않을 정도다.
산중가에서 판매하는 국화와 목련차.
올해는 절임배추와 함께 김치 양념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김치 양념은 절임배추와 버무리면 손쉽게 맛있는 김장김치가 되는 일종의 결합 상품이다.

△산중가의 미래는

여유 있는 노년을 꿈꿔온 부부에게는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부모의 농촌 생활을 본받아 자신도 농부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마 전 오래전 폐교한 시골 학교를 사들인 뒤 이곳에서 ‘농·임산물 가공 가업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농업을 집안의 가업으로 이어받아 전통을 계승하며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것이다.

또한 직접 재배한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고, 강사를 초빙해 친환경 먹거리를 개발하고 체험할 수 있는 지역 명소로 만들고 싶어 한다.

지역 생산자들과 연합해 연계사업을 개발하고, 이로 인한 고용창출 증대로 활력 넘치는 농촌도 그려본다.

이영애씨는 “농작물을 재배할 때면 항상 덧셈보다는 뺄셈을 생각한다”면서 “농약은 덜 치고 좋은 거름은 더 주고 항상 내가 먹을 음식이라는 생각으로 기릅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짧은 농촌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기보다는 몸소 느낀 부분이 더 많다”며 “농촌의 빠른 변화보다는 농촌의 삶에 녹아들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마음으로 산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김형소 기자
김형소 기자 khs@kyongbuk.com

울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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