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곰곰이
내 캄캄함을 생각했다
식탁 위
짧았던 나를 놔둔다
조그만 빈 접시처럼
접시 속에서도 물은 처음처럼 미끄러지고 있다
아무 잘못도 없이 펴 있는 꽃무늬를 타고
밥 먹을 적마다
어두운 저 아래
죽음의 한 편에
접시에서 꺼낸 말들
미끄러운 것들만 사랑했다
구름처럼 없어질 것들만 사랑했다
매일매일 내게 아니었던 처음 접시
이제 와 아파 아파
칼자국을 그으며
무엇을 슬퍼하며 피를 흘리는 것일까
내 손가락들
식탁에서 목마르던 처음 접시를 찾는다




<감상> ‘처음 접시’가 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처음을 담는 접시는 처음처럼 애초에 환(幻)이었습니다. 우리는 물처럼 미끄러워지는 것들, 구름처럼 없어질 것들만 사랑한 것입니다. 처음처럼 온전히 제 것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욕망과 사랑에 목말라 했을 뿐, 삶 자체가 허상(虛像)이었습니다. 곧 현실 자체가 꿈인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슬퍼하며 피를 흘리는지 모른 채, 잡히지 않는 ‘처음 접시’를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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