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양 대법원장의 접견실에는 추사 세한도 모작을 걸기까지 했다. 사법부가 ‘세한의 소나무’가 돼야 한다는 신년사를 들은 대전에 사는 박구용씨가 보낸 그림이었다. 박 옹은 그림과 함께 보낸 편지에서 “자신에게는 소중한 그림이지만 대법원장의 신년사가 마음에 와 닿아 조건 없이 드린다”라고 썼다. 살을 에는 엄동설한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소나무처럼 사법부의 기상을 세워달라는 뜻을 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세한도가 무색해졌다. 24일 오전 양 전대법원장(71)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사법부 71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전직 행정부 수장인 이명박(78), 박근혜 전 대통령(67)에 이어 전직 사법부 수장까지 수의를 입고 6.56㎡(약 1.9평)의 독방에 수감됐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40여 가지 범법행위를 적용했지만 주요 혐의는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된 직권남용이다. 전 대법원장을 구속해야 할 정도로 증거와 법리가 충분한 지는 결국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전직 사법부 수장의 구속은 양 전 대법관이 영장실질심사 때 “수치스럽다”고 했고, 현직 김명수 대법원장이 출근길에 고개 숙이며 “부끄럽다”고 한 것처럼 1월 24일은 ‘법치일(法恥日·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록되게 됐다. 2019년 겨울, “소나무처럼 사법부의 기상을 세워달라”는 뜻에서 내 걸었다는 세한도가 참 삭막하고 쓸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