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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규 문학평론가
 대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책 ‘월든’을 쓴 미국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사람을 부당하게 투옥하는 정부 아래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어야 할 진정한 공간은 감옥뿐이라 했다.

그는 노예제도 폐지론자였으며 19세기 미국이 멕시코를 침공한 것을 가지고 크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정부정책에 대해 항거 6여 년 동안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구속됐다.

경찰이 소로우에게 이름과 주소를 묻자 ‘헌법 제5조 어떤 형사사건에서도 자기 의사에 반한 증언을 강요받지 않는다는’ 법조문을 인용 ‘헌법 제5조’가 자신의 주소와 이름이라고 대답했다. 또 그는 “나만의 신대륙과 세계를 찾아가는 콜럼버스가 되라, 생각의 통로를 새로 열어라”고 도 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21세기 인류사회가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 못지않게 요동을 치고 있다. 무엇이 정의인지 혼란스럽다.

소로우가 정부의 잘못한 정책에 대한 불복종의미로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았던 것처럼 최근 중앙정부 한 공직자가 사표를 던지고 또 다른 공직자는 면직당할 것 예상하면서도 평소 업무를 취급하면서 본의 아니게 잘 못 됐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폭로했다. 그 일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들이 폭로하게 된 본래 의도가 무엇이 됐던 보다 나은 국가 미래를 위해서 잘 못된 행태 개선을 위해 폭로를 하게 됐다는 그 용기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들의 행태에 대해 비난하는 것도 좋지만 더 나아가 불이익을 감수하며 남이야 어떻든 나만이라도 잘해 보겠다는 태도를 보인 그들을 모두가 본받아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소로우가 말한 나만의 신대륙과 세계를 찾아가는 콜럼버스로 생각의 통로를 새로 연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들의 태도를 두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자세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에 대한 진정성이다. 그 진정성을 밝혀야 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잘 못 돼서는 안 된다.

부정적 또는 긍정적 사고로 생각을 굳히고 그들의 행위에 접근하지 말고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 동기와 본질을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가가 그들이 주장하는 본질에 조금도 부끄럼이 없다면 그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반면 그들이 주장하는 사안에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측면이 있다면 그들 주장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태도가 올바른 처리가 아닌가 싶다.

그들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자기희생을 각오한 행위로 높이 평가는 물론 가혹한 처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혹한 처벌은 또 다른 정의로운 행동을 근본적으로 막아버리는 행태가 된다. 그게 적폐가 될 수 있다.

필요한 건 이 기회에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불의에 굴하지 않고 나만이라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인 점 높이 평가는 물론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자타가 공감할 수 있는 답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밝아지고 국가가 발전한다. 무엇보다 감옥이 정의로운 사람이 있어야 할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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