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숲 속 나라에 그들의 공동양식을 저장한 벌꿀 창고가 있었다. 창고 감시자로 곰을 선출해 맡겼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꿀을 좋아하는 곰에게 꿀 창고를 맡긴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곰은 꿀을 몽땅 훔쳐 자기가 겨울잠을 잘 굴속에 옮겨 놓았다. 이 사실을 안 동물들은 곰을 재판에 회부했다.

“겨울 동안 한 발자국도 굴에서 나와서는 안된다.”는 판결이 곰에게 내려졌다. 훔쳐간 꿀을 내놓으라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었다. 꿀을 배불리 먹은 곰은 겨울 내내 편안히 잠을 잤다. 이 이야기 속의 곰은 ‘공금을 횡령한 공무원’을 빗댄 것이다. 국민의 돈을 횡령한 공직자가 처벌받지 않고 무사히 풍족하게 살아가는 부조리 현상을 풍자한 러시아의 우화다.

이 같은 ‘곰재판’은 독재자가 다스리는 후진국에선 흔한 일이다. 전의의 여신상을 보면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다. 오른손엔 칼, 왼손엔 저울을 들고 법 앞에 서 있는 당사자가 강자인지 약자인지를 보지 않고 오직 법에 의해서 저울처럼 공정하고, 칼처럼 냉정하게 판단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눈을 뜨면 정의가 강자에게 기울어질 위험이 큰 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 권리를 저울질 하는 저울을 쥐고 있고, 다른 한 손엔 권리를 주장하는 칼을 쥐고 있다. 저울을 못 가진 칼은 단순한 물리적인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칼을 못 갖고 저울만 가져 봤자 강제할 힘이 없는 만큼 법은 무력한 것이 되고 만다” 독일 법철학자 루돌프 에링의 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당부했다. “법관은 어떠한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법과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 그들 역시 법과 양심의 죄인이 된다”

요즈음 사법부의 돌아가는 기류를 봐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의 1심 공판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곰재판’을 예측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경남지사가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여권에서 판결을 내린 성창호 부장판사를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야권에서는 양심과 용기가 돋보이는 판결이라 평가하고 있다. 법원의 판단을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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