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린 등은 종이었다

해질녘,
구겨진 빛을 펼치는
종소리를 듣는다, 한 가닥
햇빛이 소중해지는

진펄밭 썰물 때면
파인 상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호밋날로 캐내는, 한 생애

쪼그린 아낙의 등 뒤로
끄덕이며 끄덕이며 나귀처럼
고개 숙이는 햇살
어둠이 찾아오면, 소리 없이

밀물에 잠기는 종소리




<감상> 아낙은 등을 펼 새도 없이 진펄밭에서 호미로 노동에 전념한다. 아낙의 등은 종(鐘)처럼 굽어 있다. 어슬녘 밀물이 밀려오면 몸에서 종소리가 난다. 종은 세상의 잡음을 걸러내고 어둠을 끌어당긴다. 맑은 종소리가 구겨진 아낙의 등을, 구겨진 햇빛을 펴게 한다. 어둠이 내리면 종소리는 밀물에 잠기고, 고단한 하루를 잘 보냈다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썰물과 밀물이 때를 맞춰 움직이듯, 종소리도 때에 맞춰 울린다. 종의 혀는 짧아도 소리의 파동은 멀리까지 번진다. 우리네 인생은 짧은데 소중한 것들을 오래 울릴 수 있을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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