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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인간의 목숨도 그러하다. 죽음에 예외는 없다. 한데도 사람은 영생을 꿈꾼다. 머잖아 부닥칠 미래이나 자신은 예외라 여긴다. 인생은 죽음을 향해 걷는 발걸음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 말했다. 빛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둠이 있기 때문이고, 삶이 가치 있는 까닭은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멸에 대해 사유가 깊을수록 이타적 활동에 나설 기회가 많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의학 미드 ‘코드 블랙’은 사망 선고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는 환자의 수가 응급실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통상적으로 코드 블랙 상황은 연평균 5회라고 자막으로 소개한다. 수술이나 구급 처치 도중 환자가 죽으면, 수석 의사가 다른 의료진 소견 여부를 묻고는 말한다. ‘사망 시각 00시 00분’

마치 판사가 판결을 내리듯 의사의 엄숙한 임종 선언이다. 가족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에 시청자 감정도 이입되지 않으랴. 병원의 죽음 판정은 과학적으로 이뤄진다. 맥박·동공·심전도 모두가 정지 상태일 경우 교수급 의사가 결정을 내린다.

언젠가 부산에서 발생한 일이다. 육십 대 남자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의료진이 입몰 판단을 내리고 영안실로 옮기려 했으나, 다시 맥박과 혈압이 회복된 것이다. 15분 동안 심정지인 환자의 절명 선고는 의학적으로 당연한 조치라는 병원 측의 주장. 그의 부활(?)은 기적이거나 의료 과실 가운데 하나라는 게 당시 세간의 시각이었다.

살면서 가급적 겪지 않아야 할 일에는 구급차에 관한 추억도 포함된다. 비극의 원점이 될 가능성이 다분해서다. 지난해 추석날 무렵 연달아 그런 체험을 했다. 급박한 순간의 일희일비 행불행이었다.

평소 일찍 기상하는 아버지께서 인기척이 없었다. 잠자리 그대로 의식이 없었고 온몸은 굳었다. 생전 처음 119 전화를 걸었다. 어떤 상태냐 물었고 뇌출혈 같다고 답했다. 곧장 문자가 왔다.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였고 신고한 장소로 출동했다는 내용. 119 구급대원 세 명이 들어왔다. 말이 들리느냐고 의식을 확인하더니 혈압을 측정한 듯하다. “내 몸이 이상하다.” 가족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

부친이 쓰러질 당시 엄마는 그 보름 전 동일한 병원에 입원하셨다. 폐질환 악화로 호흡이 곤란해 오래 살지 못하실 거라고, 우리 삼형제는 은근한 대화를 나누었다. 게다가 건강한 남편이 급사했으니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셨다.

장례를 마치자마자 산소 호흡기가 설치된 사설 구급차를 불러 서울로 출발했다. 무작정 서울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로 달렸다. 동생은 모친과 함께 탔었고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았다. 두 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비용은 36만 원이다.

‘물렀거라, 사또 행차시다.’ 비상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거침없이 달리는 구급차 탑승 소감이다. 에프원 대회 선수처럼 차선을 오가며 질주하는 운전 실력. 단속 카메라는 서류 제출이 귀찮아 갓길로 피해서 다닌다. 삐뽀 삐뽀! 차 안은 경적 소리로 귀가 멍멍했다.

응급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저절로 눈길이 머문다. 그날의 체험이 재현되어서다. 응급 구조사의 처치 일부가 의료법상 불법이란 사실도 그제야 알았다. 인공호흡 등 14가지만 허용된다.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죽음을 계기로 구급 업무 규제를 합리화하자. 그 중요성을 직접 경험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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