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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의 인문명리] 백범 김구 천기와 청년기 삶의 궤적
[류동학의 인문명리] 백범 김구 천기와 청년기 삶의 궤적
  • 류동학 사)혜명학술원 원장
  • 승인 2019년 02월 25일 16시 1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2월 26일 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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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동학 사)혜명학술원 원장
올해 기해년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매우 뜻깊은 해이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1876년 8월 29일 (음력 7월 11일) ~ 1949년 6월 26일)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정치인, 통일운동가이다. 그는 동학농민운동과 애국계몽운동 참가와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를 일으킨 한인애국단을 이끌었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역임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그는 근대화의 시발점이 된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군 벽성군 운산면 백운방 텃골(基洞)에서 김방경 계열의 (구)안동 김씨 김순영(金淳永)과 현풍곽씨 곽양식의 딸 곽낙원 부부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인조대 정승을 역임한 김자점의 방계로 몰락하여 그가 태어날 당시는 상민출신이었다.

태어날 당시의 천기는 다음과 같다.


그의 천기는 일간인 ①기(己)土를 기준으로 토-금-수-목-화로 전개된다. 518,400가지의 경우의 수인 팔자 명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성향과 기질을 좌우하는 것은 ①일간과 ②월지이다. 그는 근본적인 기질과 사회적인 방향성을 예고하는 월지의 격국이 상관격(傷官格)이다. 그의 본성적인 특성이 강한 상관이라는 명리의 십성부호는 기존의 체제나 틀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총명한 두뇌의 성향으로 회초리 역할을 담당하는 어머니나 스승에 해당하는 정인(正印)이나 재성(財星·편재와 정재의 통칭)으로 다스리면 상관의 격이 높아진다.

백범의 천기가 바로 이런 경우로 그는 상관격으로 터프하고 반항성이 강한 상관의 특성을 회초리같은 ③,⑥,⑦의 자비로운 어머니와 스승 및 대의명분을 상징하는 정인과 년지의 ⑤자(子·쥐)水 편재가 잘 컨트롤하고 있어 상관격이 성격(成格)되어 그릇이 큰 인물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특히 상관의 특징은 불의에 항거하고 시시비비를 선호하는 외향적인 행동파로, 의협십이 강한 격렬한 강점을 가진 인자이다. 백범은 어릴 적 아버지 숟가락을 부러뜨려 엿을 사 먹는 등 개구쟁이 행동으로 부모님의 꾸중을 들을 만큼 상관격의 특성을 보인다. 그는 양반집 자제에 저항하기도 하고 과거장의 시험부정을 보고 분개하여 벼슬길을 단념하고 관상을 공부하게 된다. 그는 당시 자신이 타고난 복은 약하지만,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하여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는 존경받는 삶의 족적을 크게 남겼다.

이런 성향은 비록 거친 성정의 상관격이지만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회적인 명예와 지위를 상징하는 정인(正印)이라는 훌륭한 십성을 여러 개 가지고 태어난 덕분이다. 그는 정인에 해당하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스승 및 후견인의 도움도 많이 받게 된다. 그는 불의에 항거했던 동학농민운동에 동학의 해주접주로 참가하여 실패하자 안중근 의사의 부친인 안태훈의 배려로 몸을 의탁하게 된다. 이후 화서학파로 이항로의 문인인 유중교의 제자이자 의병장 유인석의 동문인 후조 고능선을 만나 춘추대의와 의리에 눈뜨게 되었다.

이후 백범은 황해도 치하포에서 국모인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는다는 이유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처단하여 사형선고를 받았다. 다행히 고종의 사형집행정지로 살아났다. 사람은 어려울 때 본인이 믿는 종교나 조상덕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인자가 명리학 십성용어로 정인(正印)이다. 올해는 임시정부 100주년의 해로 정인의 사랑이 온 국민에게 넘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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