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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인문학] 상처의 힘
[돌봄의 인문학] 상처의 힘
  •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년 02월 26일 16시 4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2월 27일 수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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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샤워를 하는데 종아리 아래가 따끔거려 내려다보았더니 제법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피까지 맺혀 있으니 날카로운 어딘가에 부딪힌 듯한데 도무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언제 이랬을까, 수많은 순간이 스쳐 가도 끝내 떠오르지 않는 한순간….

일찍 잠이 깬 어떤 날은 누운 채로 지난날을 더듬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습관은 하루를 최대한 세분화시켜보는 일인데 처음에는 밤과 낮으로 나누고 그다음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고 차츰 시간 단위별로 쪼개어 더듬어보곤 한다. 어떤 날은 시간을 더 잘게 쪼개어보기도 하는데 그 시도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내 습관은 시간을 잘 쓰는 방법과 관련이 있는데 매 순간을 잘 기억하는 것만이 시간을 잘 쓰는 방법이라는 한 소설가의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뭉텅뭉텅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시간을 망각하면서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의식적인 시간 나누기 방식은 글쓰기와 관련된 훈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를 극복하려는 의식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매 순간을 기록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하루를 길게 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잠시 한눈팔다 보면 하루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간혹 어떤 계기를 통해 그런 순간을 실감할 때가 있다. 종아리에 난 상처를 통해 나는 감각 없이 보낸 시간에 대해 깜짝 놀라며 또 그렇게 보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그 상처가 낫고 상처의 느낌이 사라지면 다시 그런 망각을 반복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어떤 상처든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상처는 우리에게 고통이 아니라 힘이 될 수 있다. 마음의 상처든 몸의 상처든 그 상처가 우리를 괴롭히던 순간을 생각해보자. 적어도 그 순간 우리는 아파하고 또한 후회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방안을 고심하지도 않았던가. 상처가 큰 것이었을수록 우리는 크나큰 변화를 겪을 것이고 다시는 그런 상처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고통 속에서 평생 허우적거리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상처는 결국 우리를 변화시키는 혹은 성장시키는 힘이 되는 것이다.

샤워를 마칠 때까지 내가 생각한 것은 따끔거리는 그 상처에 대해서가 아니라 무감하게 지나온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새끼손톱만 한 상처하나를 통해 나는 나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작은 상처를 통해 내 마음속에 있던 큰 상처를 떠올렸고 그것이 나를 끊임없이 걸어오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처의 나날들이 없었다면 내 삶은 소용돌이 하나 없는 웅덩이처럼 악취나 풍기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피맺힌 상처가 나 있다 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잠시만 그 상처 속으로 들어가 보자.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으며 우리의 삶을 자극하고 채찍질하는 그 상처의 소리를 들어보자. 상처가 아픈 것은 우리 몸이 그것을 극복하려는 보상기전에 불과할 뿐, 그것 때문에 고심할 것은 없다. 우리의 몸은 한곳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려는 방어체계를 스스로 세운다. 그러니 지금 그 어떤 상처 속에 있다 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다만 주의할 점은 그 상처가 덧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상처를 동시에 만드는 것도 금물이다. 지금 앓고 있는 상처의 힘을 믿어보라.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 든 삶을 느끼고 사랑해보라. 당신은 그것의 힘으로 내일을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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