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사랑이 내게로 왔다
가장 늦은 사랑이 첫사랑이다
봄여름가을
꽃 시절 다 놓치고
언 땅 위에서
나는 붉어졌다
누구는 나를 가리켜 봄이라 하지만
꽃물을 길어 올린 건
겨울이다 인색한 몇 올의
빛을 붙들어 온몸을 태운
한 그리움의
실성(失性)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는가
지금 그리워해도 되는가
너는 묻지 않았으니
스스로 터져 봄날이 되는 사랑아
아직 얼어붙은 하늘에 뾰루퉁 입 내민
붉은 키스 가장 이른 사랑이 내게로 왔다




<감상> 누군가는 홍매(紅梅)를 보고 이른 봄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매화가 붉은 꽃물을 길어 올린 건 겨울 내내 애태운 그리움 때문이다. 순간의 꽃은 없다. 늦은 겨울이 이미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시절 다 놓치고 늦게 핀 홍매이기에 봄을 알리는 꽃이 된 거다. 우리의 사랑도 한 시절 다 지난 가장 늦은 사랑이다. 가장 늦었으므로 첫사랑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해도 되는가 묻지 말자.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입술을 내밀면 내미는 대로 몸을 내맡기면, 바로 가장 이른 사랑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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