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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경북인들
[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경북인들
  • 강윤정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장
  • 승인 2019년 02월 28일 18시 07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3월 01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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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정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장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제100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민국(民國)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경북인들’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3월 1일부터 7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기획전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석주홀에 마련되어 있다. 3·1운동의 영향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의정원에 참여한 경북인을 조명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 보기 위한 자리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독립선언에 이어 전국에서 3개월 동안 만세시위가 잇달았다. 온 겨레가 일어나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것이다. 경북에서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5월 7일 청도군 매전면 구촌리에 이르기까지 두 달 동안 80곳이 넘는 곳에서 90차례 넘게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1운동은 4월 11일 ‘대한민국’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를 세운 것이다. 또 바로 그날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공포되고, 임시정부(정부)와 임시의정원(의회)이 구성됐다. 10개 조로 구성된 임시헌장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제1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함(제2조)’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즉, 민주와 법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담아낸 것이다. 이는 3·1운동이 이루어낸 중요한 결실이었다.

그 뒤 대한민국 정부(임시정부)와 의회(임시의정원)는 조국광복을 위해 27년 동안 나라 밖 중국에서 쉼 없이 투쟁했다. 이는 세계사에서도 찾기 힘든 일이다. 국가를 세우고 정부와 의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펼쳐나간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인 걸음에 경북 사람도 어김없이 함께했다. 더러는 대한민국의 서막에 참여하기도 하고, 더러는 만주에서 서로군정서를 만들어 지원했다. 또 국민대표회의 의장(김동삼)?임시정부 국무령(이상룡)을 맡기도 했으며, 한국광복군이 되어 기꺼이 전쟁터로 나갔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경북인이 약 120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에 한국광복군에 참여한 80여 명(전체 광복군의 10%)을 더하면 모두 200여 명이 넘는다. 이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이처럼 경북인들은 민국(民國)이 뿌리를 내리고, 나라를 되찾는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한국근대사는 크게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다. 하나는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다.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는 이 두 가지 시대 과제를 동시에 풀어나간 역사였다. 이 때문에 한국근대사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는 정통성과 큰 가치를 지닌다. 그 역사 가운데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작업이 각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맞이하고 있다.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시대 과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앞으로의 여정 또한 간단치 않을 것임이 자명하다. 그러나 그 고단한 순간마다 100년 전 ‘민국’의 역사를 열어주었던 시민 정신과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열망, 인도주의가 우리의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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