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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력과 재물, 삶의 전부가 아니다
[기고] 권력과 재물, 삶의 전부가 아니다
  • 한정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년 03월 04일 19시 49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3월 05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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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규 문학평론가.jpeg
▲ 한정규 문학평론가
인간의 삶 그 수단이 천태만상이다. 그런 삶 중에는 남이 부러워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남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삶이 있다.

삶의 중심에 권력의 노예, 재물의 노예가 많다. 많아도 지나치리만큼 많다. 그런가 하면 권력과 재물 따위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BC 4세기경 네팔 석가족의 우두머리 정반왕의 아들 석가모니는 장차 왕이 되는 것이 싫어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 때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출가했다.

석가모니는 출가 후 훗날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석가모니는 인류사에 수세기를 두고 이어지며 현재 그를 추앙하는 사람만도 수억 명이다. 그의 명성은, 그가 남긴 족적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재력가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인간이 권력과 재물에 속물이 되더라도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과욕은 결국 불행을 초래한다.

달라이라마, 간디, 만델라 그들은 권력과 재물을 탐내지 않고 이타주의에 근간을 둔 정의로운 삶을 추구했다. 그들의 삶을 보고 내 안의 정신세계를 깨우쳐야 한다. 참된 삶을 위해 필요하다.

생명이 끊기는 순간 권력도 재물도 물거품이 된다. 다만 꼬리표를 달고 그 이름만 남을 뿐이다. 물거품이 어느 순간 사라지듯 그 사람도 다를 바 없다. 죽으면 입고 간다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권력과 재물 지나치게 탐낼 것 없다. 또 탐낸다고 반드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가진 것만큼 고통도 따른다.

옷이 체구에 맞아야 보기 좋듯 권력도 재물도 그렇다. 옷이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보기 흉하듯 재물도 너무 많거나 적으면 재앙이 붙고, 권력이 분수에 맞지 않게 높으면 그에 준한 고통이 따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 우리 역사만 보아도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은 걸 얼마든지 알 수 있다.

능력이 미치지 못한 왕자를 왕으로 앉혀 놓으면 왕으로서 제구실을 하지 못해 섭정을 해야만 한다. 그런 왕 한두 명이 아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못함을 보여 준 증거다. 그래서 자리에 맞는 사람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았느냐다. 그리고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또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보다는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과 재물에 지나치게 탐을 내다보면 무리한 삶을 살게 되고 그런 삶은 자칫 재앙을 불러온다. 재앙은 그런 사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분수에 넘치는 권력 재물 결코 삶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점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권력과 재물이 전부가 아니다. 권력 재물 삶을 위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직 진실 된 삶, 부끄럽지 않은 삶이어야 한다. 신의 믿음이 중요하다.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보다 성실 근면한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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