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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숙 예끼미술관 관장
오다가다 편하게 읽었던, 작은 책(작가·김상현)에는 이런 글이 있다.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인생 살기 참 힘들어요. 꿈을 위해 노력하면 현실을 좀 보라고 하고, 현실을 보게 되면 꿈을 보라고 해요.’

기대했던 꿈이 현실과 마주한 순간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현실처럼 느껴져서 지금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다른 허상의 현실과 마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계는 어떤 기준에 의해 분간되는 한계인데, 그래서 경계에 서 있는 것은 언제나 불안하다.

몇 년 전에 출간되었던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접한 이들은 그들이 놓인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지만, 아직 저 너머 세계의 불안과 갈등 문제에 해답을 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김상현(‘작은책’ 작가의 同名異人) 작가는 30대 중반에 작품으로 만나 어느덧, 5~6년의 시간이 흘렀다.
김상현 作 ‘낯선 풍경’.

전시 주제가 ‘Ilusion(일루션)’이었던 작가 노트를 보자.

‘인류가 시작되고 산업화를 거쳐 현대사회를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모습은 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인류는 규범과 규칙 그리고 윤리와 교육이라는 통제된 사회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며 반론하지는 않는 듯하다. 통제된 질서 안에는 명확함과 혼란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 속에 수많은 질문을 던져 놓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질서와 혼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렇게 영속된 과정 속 사회라는 명분 아래 내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놓치는 듯하다. 사회는 수많은 질문과 답을 원하고 있다.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벌칙의 하나로 스타킹을 얼굴에 씌우는 장면을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행해지는 과정이 하나의 수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김상현 작가의 ‘낯선 풍경(사진)’은 회화와 입체가 가지고 있는 이분법적 관계를 통해, 잠재된 내면의 美를 보여주고 있다. 고유의 번호로 생산되는 오브제(마네킹)와 같이 우리도 사회의 일원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호화된 숫자(주민등록번호 등)가 데이터화 되어 있다. 이렇게 데이터화 되어 있는 우리의 삶은 구속과 통제라는 단어를 짊어지고 내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놓치고 있다.

마네킹에 색을 입히고 다시 벗겨내기를 반복한다. 예상치 않게 우연의 색이 나타난다. 무한하고, 잠재된 내면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데이터된 사회 속에서 작가 자신 고유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작품을 통하여 사회 제약과 자신의 힘든 상황을 견디고, 예술을 통해 삶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있다. 대중문화는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진지하고 어려운 예술품을 대중이 감상하기에는 어렵다. 이때 등장한 서양의 ‘팝 아트(앤디 워홀)’는 대중문화, 예술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지나친 대중예술은 예술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만들 것이다.

삶과 죽음 속에 인간의 존재를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유행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작고 확실한 행복),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은어가 있다. 수많은 경쟁과 치열한 삶 속에 지친 사람들이 미래의 큰 그림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단편적이나마 돌아보고자 하였을 것이다.

삶을 회복시키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화해시켜보자. 그 속에는 나를 사랑한 ‘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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