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예의 고장' 의성 선비정신의 뿌리를 만나다
빙계서원 건립은 신원복(申元福), 신원록(申元祿) 형제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신원복은 1543년(중종 38) 인근 고을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건립할 때 동생 신원록을 보내 주세붕을 스승으로 받들게 했다.
2002년도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착공한 복원공사가 2006년 5월 완공됨에 따라 지역유림의 뜻 모아 이건의 공적을 기려 학동(鶴洞) 이광준을 추향함으로써 6현을 봉향하고 있다.
‘여지도서’를 보면 빙계서원은 가정 병진년 명종 11년(1556)에 장천(長川)가에 처음 세우고 김안국의 위패를 모셨다. 1576년(선조 9년) ‘장천’으로 사액 받았다. 그 후 빙산사(氷山寺) 옛터로 옮겨 세우고 이언적의 위패를 함께 모셨으며 이름을 ‘빙계’로 바꾸었다. 1689년(숙종 15) 고을 사람들이 올린 상소에 따라 유성룡, 김성일, 장현광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긍익(李肯翊·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원의 창건 연원이 깊고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원을 이건한 내용은 현종 7년(1666년) 남몽뢰(南夢賚)가 쓴 기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건은 선조 23년(1600) 이광준(李光俊)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전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옛 재목과 남은 기와를 주로 활용하여 이듬해 준공했다.
빙계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오랫동안 폐허로 남게 됐다. 그러다 2002년 의성 지역 유림의 공의를 모아 2006년 유교 문화권 관광 개발 사업의 목적으로 복원을 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이재 옆에는 담장을 쌓아 별도의 부속 건물을 두었는데 공수청과 전사청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양쪽으로 방을 두면서 마루를 앞으로 내었다. 좌측 방과 마루 틈새에 창고의 역할을 하는 건물을 배치시켜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숭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사당 안에는 6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빙계서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석전대제(釋奠大祭)가 행해지고 근래에는 고가 음악회 ‘전통과 현대의 만남, 고가에서 만나는 Happy Concert’가 개최되고 있다. 비지정문화재인 빙계서원 현재 서원재산보존 관리위원회가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