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29. 의성 빙계서원
[서원] 29. 의성 빙계서원
  • 이창진 기자
  • 승인 2019년 03월 13일 23시 10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3월 14일 목요일
  • 13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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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예의 고장' 의성 선비정신의 뿌리를 만나다
빙계서원 전경
빙계서원氷溪書院)은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에 있는 서원으로 1556년(명종 11)에 김안국(金安國)·이언적(李彦迪)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빙계서원 건립은 신원복(申元福), 신원록(申元祿) 형제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신원복은 1543년(중종 38) 인근 고을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건립할 때 동생 신원록을 보내 주세붕을 스승으로 받들게 했다.
빙계서원 입구
주세붕에게서 수학한 뒤 돌아온 신원록은 의성에도 서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해 논의 끝에 1556년 김안국(金安國)을 배향하는 장천서원을 건립했다. 선조 9년(1576)에는 나라로부터 ‘장천(長川)’의 사액을 받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 선조 23년(1600) 의성 지역 유림의 논의를 거쳐 현 위치에 ‘빙산사’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빙계(氷溪)’로 이름을 고쳤다.

지역 유림들이 6현을 봉향하는 석전 대제례행사 모습
선조 33년(1600) 학동(鶴洞) 이광준이 춘산면 빙계리로 이건 후 회재( 晦齋) 이언적을 합향해 빙계서원으로 개칭하고 서애(서애) 류성룡, 학봉(鶴峰) 김성일, 여헌 (旅軒) 장현광을 추향해 오다가 대원군의 전국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됐다.

2002년도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착공한 복원공사가 2006년 5월 완공됨에 따라 지역유림의 뜻 모아 이건의 공적을 기려 학동(鶴洞) 이광준을 추향함으로써 6현을 봉향하고 있다.

퇴계선생의 종손이신 이근필 공의 글씨이다. 빙계서원 현판
빙계서원의 삼문인 빙월루의 현판글씨는 퇴계 선생의 종손이신 이근필 공의 글씨이다. 빙계서원은 풍파를 많이 겪었다. 대원군 이전에도 임진왜란 때에 서원과 묘우가 훼파되기도 했다

‘여지도서’를 보면 빙계서원은 가정 병진년 명종 11년(1556)에 장천(長川)가에 처음 세우고 김안국의 위패를 모셨다. 1576년(선조 9년) ‘장천’으로 사액 받았다. 그 후 빙산사(氷山寺) 옛터로 옮겨 세우고 이언적의 위패를 함께 모셨으며 이름을 ‘빙계’로 바꾸었다. 1689년(숙종 15) 고을 사람들이 올린 상소에 따라 유성룡, 김성일, 장현광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긍익(李肯翊·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원의 창건 연원이 깊고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원을 이건한 내용은 현종 7년(1666년) 남몽뢰(南夢賚)가 쓴 기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건은 선조 23년(1600) 이광준(李光俊)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전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옛 재목과 남은 기와를 주로 활용하여 이듬해 준공했다.

공수청 현판
서원 건물은 강당, 동재, 서재, 전루(前樓), 동몽재, 공수청(公需廳) 등 총 30여 칸으로 되어 비록 병란 직후 어려움 속에 건립했지만 학궁의 규모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한다. 다만 마루가 좁고 연못이 없는 것을 아쉽다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이광준의 손자 이정숙과 박전의 주도로 1647년 봄 묘우가 이루어졌고 1648년 가을에는 서루(書樓)가 일어났으며 1654년에는 주방, 1662년에는 강당 등 전후 건물들이 차례로 중건되었다고 한다.

빙계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오랫동안 폐허로 남게 됐다. 그러다 2002년 의성 지역 유림의 공의를 모아 2006년 유교 문화권 관광 개발 사업의 목적으로 복원을 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원 출입문인 빙월루
빙계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태로 사당인 숭덕사(崇德祠), 강당인 명교당(明敎堂), 동재인 학이재(學而齋), 서재인 시습재(時習齋)를 비롯하여 공수청, 빙월루(氷月樓)누각, 서원의 출입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숭덕사 현판
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명교당 앞에 자리 잡은 학이재와 시습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온돌방으로 방을 한 칸 내고, 난간을 두룬 툇마루를 넓게 낸 것이 특징이다.

학이재 옆에는 담장을 쌓아 별도의 부속 건물을 두었는데 공수청과 전사청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양쪽으로 방을 두면서 마루를 앞으로 내었다. 좌측 방과 마루 틈새에 창고의 역할을 하는 건물을 배치시켜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숭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사당 안에는 6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항상 학문을 배우고 익히라는 교훈을 주는 시습재 현판
현재 서원에는 숭덕사(崇德祠), 명교당(明敎堂), 학이재(學而齋), 시습재(時習齋), 빙월루(氷月樓), 공수청(公需廳), 전사청(典祀廳) 등의 현판과 빙계서원기(氷溪書院記) 등의 기문이 있다.

빙계서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석전대제(釋奠大祭)가 행해지고 근래에는 고가 음악회 ‘전통과 현대의 만남, 고가에서 만나는 Happy Concert’가 개최되고 있다. 비지정문화재인 빙계서원 현재 서원재산보존 관리위원회가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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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진 기자 cjlee@kyongbuk.co.kr

청송·의성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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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2019-03-14 03:39:11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그리고 교황윤허 서강대. http://blog.daum.net/macmaca/2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