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북포럼] 나눔의 벽
[새경북포럼] 나눔의 벽
  •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 승인 2019년 03월 24일 16시 39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3월 25일 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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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벽은 부정적 어감이 강한 어휘다. 무언가 경계를 짓거나 차별을 행하고 자유를 옥죄는 느낌이 짙다. 때로 극복이 어려운 한계나 장애를 비유하기도 하고, 관계나 교류의 단절을 나타내기도 한다.

유대인이 애절히 기도하는 예루살렘 서쪽 신전인 ‘통곡의 벽’이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영역 형성에 영향을 미친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성벽’ 그리고 동서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그러하다. 전쟁의 상흔이 진하게 배인 구조물. 한데 가끔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 담벼락도 보인다.

올해로 개원 서른 돌을 맞는 서울아산병원, 동관 1층 로비엔 ‘나눔의 벽’이 눈길을 끈다. 병원 운영에 일조한 기부자로 널찍한 벽면엔 이름이 빽빽하다. 아마도 기여의 무게에 따라 글자의 크기가 다르고, 여백이 있는 걸로 봐서 지금도 후원이 이루어지는가 여긴다.

제일 큰 글씨로 초대 병원장인 민병철 강호동 등 4명이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물으니 ‘그 강호동이 맞다’고 말한다. 씨름계 천하장사이자 유명 개그맨인 그가 어떤 공헌을 했을까 궁금하다.

힘으로 승부를 가리는 모래판 정상을 차지한 강호동은 재기발랄한 연예계도 장악함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사나이. 인생에서 두 분야의 성공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 그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의 가수 패티김도 번듯한 명판에 등재됐다. 몇몇은 가족과 함께 명단이 실렸다. 인연이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연면히 이어진 듯하다. 그들의 손길이 모여서 서울아산병원 의술이 다져졌고, 어머님 치료에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다.

메세나는 기업이 문화 예술 과학 스포츠 등 분야를 지원하는 활동을 뜻한다. 기원전 30년 로마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 그는 개인 고문이자 충실한 조언자인 마이케나스에게 문화와 홍보를 맡겼다. 후세에 예술을 옹호하는 행위를 마이케나스, 프랑스어로는 메세나로 표현한 계기가 됐다.

기업의 사회 기여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피렌체에서 르네상스를 꽃피운 메디치 가문은 역사에 훌륭한 명성을 올렸다. 은행업으로 축적한 재력을 예술가 후원에 사용하면서 세계사 융성에 이바지한 탓이다.

영국 CAF가 발표한 세계기부지수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경제 규모에 비해 빈약한 기부 문화를 보여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이유를 조사했다. ‘기부금 사용처가 투명하지 않다’는 항목이 1위를 차지했다. 진정성을 보장하면 참여를 늘릴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눔의 벽’을 적극 활용하면 기부자 확대와 투명성 확보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경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구절이 있으나, 이는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대부분 범인은 자신의 선행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내가 즐겨 이용하는 포항의 포은중앙도서관. 그 아트리움 한쪽 벽면엔 ‘도서 기증자 현황판’이 놓였다. 그중엔 몇몇 친한 지인도 보인다. 그는 상당한 액수의 책을 쾌척했노라 전한다. 서가에 여유 공간과 낡은 서적이 많으므로 더욱 활성화됐으면 싶다.

나눔은 아름다운 책무이자 인간성의 발현이다. 감성과 지성이 가미된 인류의 창안이기도 하다. 맹자의 측은지심은 베풂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행동 없는 연민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슴에 나눔의 벽돌을 채우고 더불어 즐기는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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