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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토 히로부미를 누가 쏘았느냐?
[기고] 이토 히로부미를 누가 쏘았느냐?
  • 한정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년 03월 24일 16시 38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3월 25일 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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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규 문학평론가
“망할 놈”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기차역에서 안중근이 쏜 총을 맞고 죽기 전 “누가 쏘았는가?”묻자 “조선인입니다” 그러자 “망할 놈”하고 숨을 거두었다.

일본의 대외침략 원흉이며 두 손에 조선인과 중국민의 선혈을 가득 묻힌 살인 백정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다. 그 소식을 러시아 판사에게 전해 들은 안중근은 “나는 조선인이다. 축하 할 일이다. 나는 나라를 위해 불행한 우리 동포들을 대신하여 원수를 갚았다. 나는 정말 기쁘다”라고 했다. 그 죄로 3월 26일 뤼순 일러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4년 8월 22일 일본이 조선을 강박 제1차 일조협약을 체결하게 했다. 그 결과 경제가 일본 정부에 장악됐다. 때문에 조선정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경제 식민화가 시작됐다.

늙은 도적 이토 히로부미는 동양평화를 위하고 조선독립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며 조선 땅에서 청나라와 또 러시아와 전쟁을 했다.

일제가 두 전쟁에서 승리하자 조선을 돕겠다고 했다. 그 후 약속과는 달리 조선을 강박 1905년 11월 17일 제2차 일조협약을 강요 체결했다. 2차 협약을 ‘5항 조약’ 또는 ‘을사보호조약’이라고도 한다.

그 공로로 1906년 2월 1일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조선통감이 됐다. 그리고 1907년 7월 24일 제3차 일조협약을 체결 조선 정부를 완전 통제 왕을 폐위 군대를 해산시켰으며 철로 광산 삼림 하천 호수 등 거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 모든 행위의 원흉이 이토 히로부미다.

이토 히로부미는 2천만 조선 사람이 일본의 보호를 받기를 원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또 오늘의 조선이 무사태평함을 누리고 매일 발전하고 있다고 천황을 속이고 천하 만방에 거짓을 고했다. 그러면서 조선인을 탄압하고 재물을 갈취했다. 뿐만아니라 1909년 3월 30일 한일합방서를 내각에 제출 7월 6일 결의 통과시켰다. 그래서 한반도를 명실공히 일본의 통치하에 넣었다.

그에 조선인들이 반발하자 위험을 피하기 위해 통감부 통감직에서 사직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 추밀원 의장이 됐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19일 이토 히로부미가 중국 동북에서 러시아가 장악한 일부 권한을 할애받기 위해 일본 천황의 전권 대표 신분으로 중국 하얼빈에 가 러시아 재정대신과 담판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해삼위로 가서 대동공보 주필에게 확인했다. 대동공보 주필 이강은 이토 히로부미의 일정을 소상하게 알려주며 안중근에게 “작은 고기 한 그물 잡는 것이 큰 상어 한 마리를 잡는 것만 못하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토 히로부미 살해를 부추기는 말이었다.

안중근은 대동공보 신문사 유진율 사장에게 “일본은 우리나라의 원수이고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나라를 침략한 원흉이다. 그 늙은 도둑놈을 이번 기회에 없애 버리겠다”고 했다. 유진율 사장은 안중근 말을 듣고 이강과 함께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중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경유할 곳에 각각 거사 준비를 하도록 하고 하얼빈엔 안중근이 채가구에는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가, 해삼위에는 엄인섭이, 쌍성사에는 강갑산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맡은 장소로 떠나기 전 안중근이 작사 작곡한 노래 ‘이토 도적놈의 말일이 이미 왔다/ 단지하여 보국을 맹세한 이/백의동포의 만세소리/ 오대주 대지를 진감하네’를 합창했다. 그리고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이른 아침 마차를 타고 하얼빈기차역으로 갔다.

이토 히로부미 그가 도착하자 일본인들이 일본 국기를 들고 늘어섰다. 환영인파의 앞에는 러시아와 중국 군인들이 줄을 지어 경비를 섰다. 이토 히로부미가 의장대를 지나 외교사절단 앞으로 가 악수를 하는 순간 안중근이 재빨리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이토히로부미와 또 다른 두 사람이 총탄에 쓰러졌다.

그것을 지켜보고 안중근은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저항하지 않고 러시아 헌병에게 잡혀갔다. 안중근의 거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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