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었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었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감상>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의 마음은 늦고 헐합니다. 촘촘하지 않고 자꾸 미끄러지는 우리의 관계이지만 기다림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나는 멀리서 당신의 그림자도 알아보는데, 당신은 맞은편 골목에서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어두워가는 어슬녘에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가 들릴까요. 어둠발이 내리는 무렵에는 공기가 가라앉고 내 목소리는 크게 퍼질 수 있으니까요. 키 큰 미루나무도 잎잎이 춤을 출 정도랍니다. 낮에 사방에서 새소리가 번쩍이지만 흘러내리고 맙니다. 내 목소리를 당신이 들어서 얻는 “문득(聞得)”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정처 없이 기다림은 계속됩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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