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소녀 가장이
일흔 살 할미를 위로하고 있었다.
식은 팥죽 한 그릇을 두고
등신대의 울음 덩어리가 서로 엉겨
간간이 들썩이며 빛나고 있었다.


굴신도 못하는 시든 할미꽃 위에
지친 나비가 날개를 접고 얕은 잠에 잠겨 있었다.
합죽이가 된 입을 오물거리며
그래도 이슥한 생을 건너온 마른 꽃잎이
잠든 소녀의 귓불을 가만히 빚어주고 있었다.




<감상> 조손 가정에서 13살 소녀 가장이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네요. 할머니는 몸이 아프므로 팥죽 한 그릇을 손녀가 얻어왔을 거예요. 팥죽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서로 울먹이기에 등신대(等身大)의 울음 덩어리가 되어 빛나고 있네요. 굴신(屈身)도 못할 정도로 몸이 불편한 할미꽃 위에 소녀는 지친 나비가 되어 잠드네요. 이슥한 생을 살아온 할미가 마른 꽃잎으로 손녀의 귓불을 가만히 빚어주어 평안한 세계로 인도하고 있네요. 할미꽃이 고개 숙여, 몸을 굽혀 피는 까닭은 고단한 생을 좀 쉬었다가 가라는 뜻이겠지요. 서로 고개 숙여 바라는 꽃들은 빛날 수밖에 없지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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