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포화상태에 이른 고준위방폐물 처분 방안 마련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역의 시민단체도 월성원전의 맥스터(사용후 핵연료 건식 저장시설)가 2021년 포화에 이른다며 추가 건설 여부를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속히 결정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결정을 한다고 해도 건설에만 최소 1년이 넘는 19개월이나 걸린다고 한다. 맥스터 저장이라는 것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월성원전 뿐 아니라 한울원전 등에도 이미 사용후핵폐기물의 저장이 한계에 이르는 등 가동 중인 원전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고준위 방폐장 건립이 시급하다. 단순히 맥스터 건설로 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월성원전 뿐 아니라 국내에 가동 중인 24기의 원전에서 ‘위험한 물질’로 분류되는 사용후핵연료가 쌓여가고 있다. 지난 40년 간 정부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각 원전마다 자체적인 안전 보관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 통계에 따르면 2018년 9월 기준 원전 전체의 포화율이 88.1%에 이른다. 월성원전의 건식저장시설은 95%, 한울 2호기는 98%까지 육박해 있어서 대책이 시급하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원전지역·환경단체·원자력계·갈등관리 전문가들이 참여한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을 가동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7월 수립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국민, 원전지역 주민, 환경단체 등 핵심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고 위험이 따르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는 중저준위 방폐물 처리와 차원이 다른 난제다. 경주에 들어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의 입지를 선정하는 데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물며 고준위방폐물 처분시설의 건설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따르기 마련일 것이다. 논란이 있지만 ‘심층처분’ 방식 외에는 현재로써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심층처분이 위험물질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삶의 공간과 격리를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이 논의해봐야 할 논점이다.

중저준위방폐물은 깊이 묻으면서 훨씬 위험성이 높은 고준위방폐물을 각 원전에 보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언제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미룰 수 없다. 지금은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행동에 들어가도 늦은 때라고 인식해야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고준위방폐물 처분 방안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하루빨리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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