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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소설가 은희경의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에는 사실과 진실을 가르는 예화가 나온다. “여자 후배와 영화를 봤던 적이 있어요. 아내가 묻더군요. 당신 여자랑 영화 보러 갔어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지요. 그 후배를 여자라고 생각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것이 진실이구요. 남자가 아닌 성별을 가진 사람과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 건 사실입니다.”

사전상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뜻하고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한다. 양자는 얼추 비슷하면서도 개념의 차이가 뚜렷하다. 모든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나 진실은 전부 사실이기에 그러하다.

문제는 거짓이 완벽한 진실로 둔갑해 유령처럼 배회하는 상황이다. 팩트(fact)를 살짝 비틀거나 내용을 슬쩍 첨삭하면, 허위는 참이란 가면을 걸친 악마로 돌변한다. 게다가 대중의 호기심이 영합돼 거대한 활개를 펼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뒷담화가 움트고 진실은 실종된다.

추측건대 음모론은 고약한 성질을 가졌다. 의혹의 대상으로 지목된 당자는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을 받으나, 낭설을 제기한 측은 아니면 말고 식이니 말이다. 그냥 잠자코 있으면 혐의를 인정하는 셈이 되니 황당할 따름이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회에도 가짜 문서가 나돌았다니 신기하다. 성과 속을 가리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이 나온다. 313년 밀라노 칙령 발표 후에 콘스탄티누스는 사유 재산을 교회에 기증한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데다가, 존립의 기반이 되는 재력을 확보함으로써 탄탄대로에 들어섰던 것이다. 한데 그의 기부 행위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장’이란 형태로 중세의 권력자를 속박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유럽 전체를 교황에게 기진한 것으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이를 명분으로 가톨릭교회는 왕들이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경우 영토를 빼앗을 권리가 있다고 천명했다. 1440년 그 문헌이 잘못된 양상이 입증된다. 르네상스 때의 인문학자인 로렌초 발라가 콘스탄티누스 당시의 서면이 아님을 밝혀낸 것이다. 가짜 서류 원본은 지금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세상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빅토리아 황금기 대영 제국을 이끌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특히 통계 자료에 근거한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숫자의 힘이고 통계의 마력이다.

방글라데시 어딘가 있다는 ‘클릭 공장’은 세평 조작의 민낯이다. 선진국 기업의 하도급을 받아 SNS 여론을 만든다. 이들 공장은 페북의 ‘좋아요’를 생산해 1000개당 15달러에 판다고 한다. 언젠가 페이스북이 엉터리 ‘좋아요’를 찾아내 제거하는 작업을 벌였다. 인기 가수 레이디 가가는 6만 명 이상의 친구가 사라질 정도였다.

허위가 난무하는 세태다. 여차하면 사기에 농락당하는 시대다. 가짜 뉴스에 가짜 사진과 가짜 댓글에 이르기까지 가짜가 진짜인 양 설친다. 이를 구분하는 안목은 일차적으로 진실에 가까이 근접한 전문가들 몫이다. 정보의 획득과 원천의 접근이 용이한 탓이다. 보통 범인들은 그저 술안주로 삼으며 대화를 나눌 뿐이다.

가짜 뉴스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암적인 존재다. 이는 공동체 구성원 상호 간 불신을 조장하고 선진국 도약의 발목을 잡는다. 국민들 각자가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는, 결코 부화뇌동하지 않는 혜안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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