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마의 검버섯은
눌어붙은 냄비 같아
누구의 요리를 위해 끓었던 흔적일까

요즘 자주 울어
잘못 걸린 전화가 연인을 찾을 때
빗방울이 난간에 매달려 빛날 때

실패한 줄 알면서 아침에 깨고
아닌 줄 알면서 한밤까지 기다리지
습관으로 숨 쉬는 날들

건전지 교체하라며 삐삐거리는
현관문이 비밀번호를 거부할 때
마지막 보름달이 떠오르네

누구나 알아 떠날 때가 되면
극장의 불이 켜지고 슬픈 주제가가 흐르지
저기 검은 배낭을 건네주렴




<감상> 나이 먹을수록 울음이 많아지는 건 지난 추억과 그리움 때문일까.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지 않았던가. 그런 습관으로 이제껏 숨 쉬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현관문이 비밀번호를 거부할 때처럼 그런 열정들이 통하지 않지만, 내 마음은 그득히 보름달로 떠오른다네. 내 이마에 검버섯이 눌어붙어도 보름달이 바다를 비춰 끓어오르는 것처럼 아직 내 슬픔은 끓고 있네. 그대가 떠날 때가 되면, 심야극장의 슬픈 주제가처럼 내 슬픔도 따라 흐르겠지. 거기 나의 열정과 슬픔과 그리움을 담은 검은 배낭을 그대에게 건네주려 하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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